[금융리뷰] 美 증시 탈출 러쉬 中 기업, 고민 깊어지는 중학개미

2023-08-22     전수용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전수용 기자] 시노펙, 상하이석유공사(시노펙 상하이), 중국석유(페트로차이나), 중국 알루미늄, 중국생명. 주식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중국 대표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미국 증권시장에서 자진 상장폐지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270개사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162개사가 상장폐지 대상 기업이다. 즉,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3개사 중 2개사는 상폐 위기에 놓여 있는 셈이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모든 외국 기업이 HFCAA(외국기업책임법) 적용 대상이지만, 전 세계에서 미국의 감독을 거부하는 나라는 중국뿐이어서 162곳 모두 중국 기업이다. 이에 따라 중학개미(중국 주식 투자에 나선 개인)들의 불안과 초조함은 극에 달하는 형국이다. 중학개미들이 중국 기업에 투자한 액수는 1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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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펙 등 中 기업 자진 상장폐지 러쉬

최근 계면신문 등 중국의 주요 언론들은 자국의 5개 기업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자진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중국석유화공그룹(시노펙)와 자회사인 상하이석유화공(시노펙 상하이), 중국석유(페트로차이나), 중국알루미늄, 중국생명 등 5개 기업이 이날 공시를 통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자진 상폐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은 “오는 25일까지 자진 상장폐지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며 이후 약 10일 후 상장 폐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뉴욕거래소 상장 주식 비중이 크지 않은 데다 상장 유지 의무를 지키기 위한 부담이 크다”고 자진 상폐 결정 이유를 밝혔다. 이들 기업의 자진 상폐 추진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올해 들어 뉴욕 증시 상장 중국 기업들을 대거 상장폐지 예비 명단에 올리는 상황에서 나왔다. 뉴욕 증시 상장 중국 기업들의 회계 감독권을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어온 SEC는 지난 3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중국 기업 162곳을 상장폐지 예비 명단에 추가했다. 미 증시 상장 중국 기업은 270곳이다. 이는 지난 2020년 통과된 HFCAA상 자국 회계기준을 3년 연속 충족하지 못하는 외국 기업을 증시에서 퇴출하도록 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잠재적 퇴출 명단에 오른 기업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중국 최대 검색 기업이자 인공지능(AI) 기업인 바이두, 포털사이트 소후닷컴,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 중국판 유튜브로 불리는 비리비리(Bilibili) 등 중국 주요 기업들이 포함됐다. 중국은 자국 기업의 상장폐지를 막기 위해 해외 상장 기업의 회계 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미국과는 협상을 벌여왔다. 앞서 중국 당국의 암묵적 경고를 무시하고 지난해 6월 미국 상장을 강행했다가 규제 철퇴를 맞은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도 1년 만인 지난 6월 자진 상폐했다.

미·중 갈등에 기름 부은 美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미국과 중국 양국은 그동안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회계 감독권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갈등을 벌였다. HFCAA에서는 미국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가 3년 연속 회계 감사 자료를 심사할 수 없을 경우 증시에서 강제 퇴출시키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기업들과 중국 정부는 회계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회계 자료를 통해 민감한 정보가 PCAOB에 넘어갈 것이라 우려한 것이다. 반면 PCAOB는 “뉴욕 증시에 상장된 모든 기업들의 회계 감사 자료를 확인하는데, 중국 기업만 예외를 허용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중국 기업들의 상장폐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중국 정부는 지난 4월 자국 규정을 고치면서 전향적인 자세를 내비치기도 했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규정에는 ‘해외 상장된 중국 기업에 대한 현장 검사는 중국의 감독·관리 기구를 중심으로 이뤄지거나, 중국 감독·관리 기구의 검사 결과에 의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이를 삭제하기로 한 것이다. 류허(劉鶴) 중국 국무원 부총리도 “미국 상장 중국 주식 문제와 관련해 양국 감독 기구 간 양호한 소통이 진행되고 있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내놓을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국유기업의 자진 상장폐지로 급변했다. 여기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미·중 양국 간 갈등이 깊어지자, 중국정부가 국유기업을 자진 철수시킨 것이란 해석이 무게가 실린다. 예를 들면, 중국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산 원유를 들여오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월스트릿저널(WSJ)은 “중국 시노펙이 자회사 유니펙을 통해 러시아산 석유를 해상 환적하는 식으로 옮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시노펙이 회계 감사 자료를 미국에 공개하면 미국에 제재 대상이 될 빌미를 줄 여지가 있어 회계감사권 협상이 불가능할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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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증시 상폐 계속될 듯

중국 기업의 뉴욕증시 이탈 행보는 국유기업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이 아니더라도 민감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미국 증시 철수를 압박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유기업의 상장폐지 통보 이전인 지난해 10월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한 차량 호출 플랫폼 디디추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때문에 웨이보와 바이두 등 상장폐지 명단에 포함된 다른 플랫폼 기업들도 상장폐지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중국 언론들은 “미국과 중국 정부가 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업체들이 미국에서 상장폐지를 선택하고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냈다. 중국 기업들의 뉴욕 증시 이탈이 본격화할 경우 투자자들은 어떻게 될까. 일단 중국 기업 주식 대부분은 홍콩거래소에서 거래될 전망이다. 상장폐지 명단에 오른 기업 대다수가 홍콩 또는 중국 본토에 상장한 상태다. 중국 증시는 외국인이 거래가능한 주식과 그렇지 못한 주식으로 복잡하게 구분돼 있는데, 홍콩 증시는 외국인에게 개방된 시장이다.

중학개미들의 고민 깊어져

문제는 중국 주식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이다. 뉴욕 증시가 하루 평균 거래량이 916억 달러(약 120조원)에 달하는 전 세계 금융 시장의 중심인 탓에 뉴욕증시에서 상장폐지된 기업들은 주가에 악영향을 피하긴 어렵다는 게 증권업계의 중론이다. 뉴욕 증시에서 퇴출됐다는 소식은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상장폐지 명단을 공개하자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는 모습이 관측되기도 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3월 명단 공개 이후 상장폐지가 현실화될 것을 우려한 헤지펀드들을 중심으로 매도 주문이 나왔다”며 “최근 대만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중 갈등 수위가 올라간 것은 분명하니, 미·중 양국간 경제적 디커플링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도 중국 주식 투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타격받은 2020년을 제외하면 매년 경제성장률 6%대 이상 고성장을 기록하면서 국내에서도 투자자들이 몰린 바 있다. 때문에 중학개미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따. 올해 상반기 1조5000억원이 몰리면서 6월 말 기준 국내 중국 주식형 펀드의 잔고는 11조3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미국 증시 상장폐지 명단이 발표된 3월 국내 178개 중국펀드 수익률은 -9.39%였고, 4월에도 –9.65%를 기록했다. 펀드평가업체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5월에는 2.52% 수익을 낸 것으로 집계됐으나, 하반기 들어서면서 다시 위기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당장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3월 명단이 처음 공개됐을 때 중국 기업들의 주가가 조정을 받았기 때문에 당장 손실을 보면서 팔아치우는 건 손해라는 얘기다. 더구나 중국 기업들이 자진해서 상장폐지에 나서지 않는다면, 2024년부터 상장폐지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 사이 대응할 시간도 충분하다는 조언이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유예기간이 있기 때문에 중국기업들이 당장 미국 증시에서 상장폐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대기하고 있어 정치적 압박 카드로 활용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