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8월 29일 오대양 사건 발생

2023-08-29     어기선 기자
1987년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87년 8월 29일은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에 위치한 (주)오대양 공장에서 집단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에는 집단 타살로 결론을 내렸지만 훗날 조사를 해보니 집단자살로 규명됐다. 사이비 종교 단체와 기업이 결합해서 만든 희대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오대양 사건은 당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이후에도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박순자의 행적

당시 48세인 박순자가 오대양이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와 기업을 만들었다. 박순자는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화의 증인에 입교했고,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위 (권신찬·유병언파) 구원파에 출석하기도 했다.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함게 이탈해서 1984년 5월 대전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사이비 종교 겸 회사인 오대양을 직접 만들었다. 오대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전세계를 주관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1984년 민속공예품 제조사 오대양을 만든 후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88올림픽 공식 협력 업체로 지정되면서 회사의 명성은 커져 갔다. 또한 유치원, 양로원, 고아원 등 사회사업을 하면서 그야말로 평판이 상당했다. 이로 인해 성공한 여성 사업가 이미지가 높았다.
1987년

박순자의 실체

하지만 박순자의 실체는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 이후 드러났다. 고아원의 경우 신도들의 자녀를 고아로 위장했고, 이들을 세뇌시켰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없고, 박순자만 진짜 어머니라고 세뇌시켰고, 아이들에게 부모를 찾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공포감을 심어줬다. 신도 및 그 자녀를 집단으로 공동 생활하게 했으며 신도들에게는 매월 한 번씩 반성의 시간이라고 해서 자신이 규율을 어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집단 구타를 당했는데 딸이 어머니가 잘못한 것을 처벌한다면서 두들겨 패기도 했다. 박순자는 엄청난 사채 빚을 끌어 모아서 용인 공장을 세우고 공예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은 공예품을 만들지 않고, 집단 생활을 시켰다. 그러다가 1986년 4월 일본 모 전자 부품 생산업체와 합작하면서 거액인 7억원을 투자해 전자제품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사기를 당했고, 사업은 실패했다. 그러면서 신도들에게 사채를 많이 끌어오라고 명했고, 신도들은 돈을 빌려서 박순자에게 바쳤다. 그렇게 모여진 사채가 170억원이었다. 일너 상황 속에서 1987년 8월 16일, 박순자에게 5억 원을 빌려준 이상배라는 사람이 빌려준 돈을 갚으라 독촉하려고 부인과 함께 오대양 공장을 찾았다가 신도들에게 집단 구타 당하다 못해 채무포기각서까지 강요받자, 분을 참지 못하고 경찰에 오대양을 고소했다. 해당 사실이 보도되면서 다른 채권자들도 박순자와 오대양에 대한 고소를 하면서 점차 박순자의 실체가 드러났다.
1987년

박순자의 만행

엄청난 사채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박순자는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80명에게 용인 공장에 모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자신과 자녀들, 가장 투자자금을 많이 끌어모은 신도들을 합해 총 32명만을 골라 식당 천장에 올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공장 창고 안의 구석 공간에 4일 동안 숨겼다. 1987년 8월 29일 오대양 직원이 용인 공장에 왔다가 숙소 천장을 의심하면서 올라갔고, 박순자를 포함한 32명을 발견하고 박순자 남편에게 알렸다. 박순자 남편은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천장의 공간은 그야말로 기괴해서 경찰들도 경악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람이 집단으로 자살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인은 경부 압박으로 인한 교살인데 저항 흔적이 없다고 판명이 되면서 집단 자살로 결론을 내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