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3.5%의 법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2023-08-30     백병훈
[파이낸셜리뷰] 전기를 실어 나르는 전선에도 늘 저항이 있다. 가장 작은 전기저항이 가장 안전하고 가성비 좋은 전도체가 된다. 역사사회의 원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역사는 최소한의 저항선을 따라 움직여 왔다. 이 역사의 행진에 크고 작은 저항은 불가피하지만 이를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의 절차적 행위가 정치다. 그래서 정치는 투쟁인 동시에 또한 투쟁의 제한이라고도 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풀어내느냐에 현대 시민사회의 고민이 있다. 사회적 저항 없는 사회는 정체되고 타락하기 때문이다.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끌어 낸 평화학자들

시민사회의 비폭력화 수단을 통해 사회적 분노와 갈등의 정치학을 사회와 주권자들에게 돌려 줄 수 있는 사회라면 최소한의 문제해결의 자생력을 갖춘 사회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현대 비폭력 저항운동에 대한 두 사람의 학자에 주목한다. 노르웨이 출신 요한 갈퉁 교수와 미국 출신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이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현대사회에서 폭력투쟁이 아닌 비폭력 저항운동이 세상을 바꾸고 정권을 바꿀 수도 있다는 실증적 논구를 했다. 과연 그런가? 노르웨이 출신 요한 갈퉁(Johan Galtung, 1930년~)은 세계적인 평화학자이자, ‘평화학’의 창시자다. 70년 대 이후 남북한을 숱하게 오가며 한반도 갈등상황의 해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질서 속의 평화와 폭력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폭력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전쟁, 사형제, 경제제재, 봉쇄, 성차별, 감금, 추방을 폭력에 포함시켰고, 나아가 문화적 폭력 개념을 정립하여 종교, 사상, 언어, 예술, 과학, 학문 등이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합법화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문화적 측면을 제시했다. 그런 그가 1996년, 결코 만만치 않은 한권의 책을 펴냈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였다. 이 책에서 그는 목표로서의 평화뿐만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평화를 중시했다. 그리고 비폭력이 어떤 방법보다 설득력과 효과적인 면에서 적실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비폭력은 ‘부드러운 권력’의 한 형태라고 보면서 권력에 맞선 또다른 권력으로서의 무저항 불복종운동을 주창했다. 특히 그는 폭거세력에 의해 자신의 개성이 비인간화되려고 한다면, 비폭력은 ‘거대한 비폭력연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까지 경고했다. 앞으로 등장할 비폭력투쟁전략의 전술적 고안인 셈이다. 비폭력 저항운동의 세계적 확산과 높은 실효성을 주창한 그의 예언은 세계 곳곳에서 현실로 확인됐다. 약자의 저항과 숭고한 목표를 위한 시민사회의 마지막 법정이자 탄원처가 비폭력저항운동인 것이다. 이런 대중운동의 사조는 오렌지혁명의 영롱한 색깔처럼 무지개를 타고 대륙을 넘나들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3.5%의 법칙’

갈퉁의 이러한 지적유산은 2011년으로 이어졌다. 미국 출신 에리카 체노웨스(Erica Chenoweth, 1980년~)와 마리아 J. 스티븐은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를 출간했다. 이후 각종 강의를 통해 비폭력 시민저항운동에 관한 자신들의 학설을 토해 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위기의 여러나라 상황에서 그들 국민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음은 물론이었다. 갈퉁이 주장한 것처럼 이들 역시 현대사회에 적합한 대중투쟁의 전술로서 비폭력저항운동이 손색이 없다는 것이었다. 폭력에 맞서기 위해 역설적으로 평화를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인물들의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노예제 폐지론의 소저너 트루스, 참정권운동의 수잔 앤서니,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세계적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이다. 이 연구는 1900년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 각국에서 발생한 반정부투쟁, 분리주의독립운동, 민주화투쟁, 민족해방투쟁 등 모든 시민저항운동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비폭력운동이 폭력운동보다 항상 전략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것을 사회과학적 논리로 증명한 그들의 연구는 폭력혁명의 26%, 비폭력운동의 53%가 성공했음을 논증했다. 아울러 비폭력저항운동은 민주주의를 촉진하지만, 폭력적 저항은 더 높은 수준의 폭력을 초래했다는 것도 찾아냈다. 그리하여 국가 전체 인구 중 3.5%가 ‘적극적이고 지속적이며 비폭력적 저항’으로 시위와 집회를 이어가면 결국 그 정권이 무너진다는 놀라운 결과를 도출해냈다. 이 연구는 절정기의 저항운동에 인구의 3.5%가 참여한 것 중 실패한 사회운동은 없었고, 비폭력시위가 폭력시위보다 2배 이상의 성공률을 갖는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이를 ‘3.5% 법칙’이라고 불렀다. 이 연구는 비폭력 무저항시민운동이 현대사회에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저항수단이 됐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특히 이 연구를 통해 비폭력 저항운동이라는 정치사회화 과정은 더 넓고 더 많은 국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고, 이 과정을 거치면 더 공고한 민주주의를 구축한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저항운동일수록 투쟁력이 높아지고 운동의 조직화와 체계화를 촉진한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권력과 기득권 세력의 불의에 맞설 수 있다는 점에서 21세기형 미래사회변혁투쟁전략이다. 이를 사수하려는 수구세력의 폭압적 저항은 거리와 광장과 빌딩 숲을 가로지르는 비폭력저항의 거대한 물결에 속수무책으로 서있을 것이다. 이로서 권력은 총구나 투표에서 나온다는 정치군사가들의 고전적 교리가 무색해졌다. 정치사회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5%는 180만 명이다. 그래서 묻는다. 3.5%의 법칙은 지금도 유효한가?

백병훈 약력

건국대학교 비교정치학 박사 국가연구원 원장 프라임경제신문 사장 한국정치심리공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