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8월 31일 짜장면 해방의 날

2023-08-31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2011년 8월 31일은 25년간 옥죄어 왔던 ‘짜장면’ 해방의 날이다. 1986년 외래어 표기법 고시에 따라 ‘짜장면’은 ‘자장면’이 됐다. 하지만 2009년 SBS 한 프로그램의 조사결과 국민의 91.8%가 ‘자장면’ 대신 ‘짜장면’을 쓰고 있었을 정도였다. 즉, 국립국어원의 표준어 규정과 실생활이 완전히 격리가 된 상황을 대표했던 것이 바로 ‘짜장면’이었다. 방송국에서는 ‘짜장면’ 대신 ‘자장면’을 발음해야 했지만 서민들은 ‘짜장면’이라고 읽었다. 그렇게 25년간 ‘짜장면’은 탄압을 받아왔다.

현실과 괴리된 표준어 지정

현실과 괴리된 표준어 지정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짜장면을 국립국어원에서 ‘자장면’으로 표기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어 炸醬(zhájiàng)’과 ‘면(麪)’이 결합한 말로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 되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 고시에 따라 ‘자장면’이 된 것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짜장면’으로 읽었다. 외래어 표기법과 실생활이 다른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 사례로 ‘버스(BUS)’를 ‘뻐스’라고 발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 고시에 따라 이제는 ‘버스’로 읽는다. 그러나 짜장면은 달랐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자장면’이라고 읽으라고 했지만 서민들은 ‘짜장면’이라고 읽었다. 이에 안도현 시인은 “아무리 당신들이 자장면이라고 해도 난 짜장면이라고 할 것이다”고 말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안도현 시인이 방송국 아나운서가 자신의 시집에 ‘짜장면’이라는 표현을 ‘자장면’으로 읽을 때 굉장히 비위가 거슬렀다고 한다.
사진=픽사베이

현실에 손 들어준 국립국어원

그렇게 25년을 지내오면서 현실에서는 ‘짜장면’이 더 우세했다. 국립국어원이 ‘자장면’ 표기와 발음을 강요했지만 현실에서는 ‘짜장면’을 더 많이 표기하고 발음했다. 중국집에서는 ‘자장면’과 ‘짜장면’ 두 개를 모두 표기했는데 ‘짜장면’을 표기한 중국집이 더 많았다. 그러다보니 서민들은 점차 ‘자장면’ 대신 ‘짜장면’을 읽고 쓰기 시작했다. 현실과 표준어 규정이 동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결국 현실에 손을 들어주기에 이르렀다. 2010년 2월 국어심의위원회에 짜장면을 표준어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안건이 회부됐다. 이후 어문규범분과 전문소위원회가 구성됐고 각각의 항목에 대해 총 3회에 걸친 심층적인 논의를 진행하는데 1년 6개월이 더 소요됐다. 당시 국립국어원 원장이었던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규범이 언어생활을 옥죄어서는 안 된다”면서 “온 국민이 다 ‘짜장면’이라고 하고 있는데 규범은 ‘자장면’이다”고 주장했다. 비록 비표준어이지만 표준어보다 더 많이 사용한다면 결국 복수표준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2011년 8월 31일 짜장면은 해방이 됐다. 이날 ‘간지럽히다’(간질이다), ‘허접쓰레기’(허섭스레기), ‘맨날’(만날), ‘복숭아뼈’(복사뼈), ‘묫자리’(묏자리) 등이 복수표준어로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