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_모파상 <여자의 일생> 중에서
누구나 어린 시절에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장래 무엇이 되고 싶으냐?” “대통령, 장군이요”라고 하면 쉽게 넘어가지만 “그냥 적당히 취직해서 먹고 살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꿈이 없는 한심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눈총을 받기 쉽다. 나이가 들면서 꿈은 직업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의사, 변호사, 교수, 연예인 등 소수의 적성에만 맞는 꿈을 다수가 좇는 향상이다.
꿈은 본래 희망이나 이상이지만 꿈이 사라진 사회에서 꿈은 한낱 살아가는 수단으로 떨어진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자신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했다. “그대의 꿈과 희망을 버리지 마라. 고귀한 사람은 모두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라. 고귀한 사람은 새로운 덕을 창조한다. 영혼의 영웅을 외면하지 마라. 그대만의 가장 높은 소망을 거룩히 지켜라.” 꿈에는 정해진 시간이나 크기가 없다. 우리가 속한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희망과 소명이 꿈이 될 수 있다.
니체의 유명한 말“신은 죽었다”는 신을 부정하거나 기독교를 비판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당시 니체가 말하고자 한 신은 기독교를 포함한 서구 문명의 오래되고 낡은 가치를 모두 부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자 했다. 현재의 삶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세계를 말하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니체의 말년은 비참했다. 이탈리아 토리노 한복판에서 채찍질 당하는 말을 끌어 앉고 오열하는 광기를 부린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10년 동안 사유도 위버멘시(초인 같은 삶)도 없는 초라한 죽음을 맞았다.
성 어거스틴이 남긴 말 가운데 ‘하나님께서 못하시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돌아가시지 못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결코 구원하실 수 없다.
셋째는, 회개하는 죄인을 벌하시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