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9월 29일 북한 대남 수해 지원

2022-09-29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84년 9월 29일은 북한이 남한의 수해에 대해 구호물자를 제공한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그해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서울과 경기 일대 많은 비가 내리면서 사망자 189명, 실종자 150명, 부상자 103명, 재산피해 2천502억원, 이재민 23만명이 발생했다.

그때까지의 수해 중 가장 피해가 컸다. 이에 북한이 수해를 지원하겠다고 뜻을 밝혔고, 전두환 정권은 이를 수용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물자가 남한에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남북한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체제 우월 과시용

북한은 9월 8일 북한적십자회 방송을 통해 남한에 쌀 7만석(약 7천800톤),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 톤, 의약품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9월 14일 대한적십자사가 북측의 제의를 수용하겠다고 화답했다.

북한이 수해 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우리도 너희들에게 이 정도는 지원할 정도이다”는 체제 우월의 과시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이 설마 이를 수용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4년 후 88서울올림픽이 있었기 때문에 남북 대화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했고, 또한 북한에게 역공을 펼치면서 당황스럽게 하기 위해 수용했다.

실제로 북한은 상당히 당황했다고 한다. 북한은 경제가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도와줄 형편이 안됐기 때문이다. 결국 비축해둔 전쟁물자를 총동원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물자를 채우지 못하면서 결국 중국에 원조를 구걸했고, 이에 겨우 물량을 충당했다고 알려졌다.

북한 화물선 침몰

당시 남한으로 내려오던 북한 화물선이 침몰해버리는 참사까지 발생했다. 그러자 전두환 정권은 받은 셈 칠테니 더 이상 보내지말라고 했다.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북한의 지원물자는 남측에 전달했고, 이에 전두환 정권은 구호품 금액의 100배에 달하는 가치의 전자제품, 손목시계, 양복지 등 선물을 북측 근로자들에게 전달했다. 김일성의 자존심을 구겨놓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북한은 북측 근로자가 받은 선물을 모두 회수했다.

당시 받은 시멘트는 워낙 품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88올림픽 고속도로 포장용으로 사용했다. 천이나 의약품 역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낮았기 때문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남북관계는 해빙기를 맞았다. 1984년 11월에는 남북경제회담이 열렸고, 이듬해인 1985년에는 전후 최초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고 상호간 예술공연단 행사가 서울과 평양에서 열리기도 했다.

다만 북한은 수해 지원을 한 후 북한 주민에게 남조선 수재민들이 자신의 구호물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식의 거짓 선동을 했다.

하지만 중국의 원조를 받아 수해 지원물품을 마련한 사실은 북한 주민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