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9월 7일 마젤란 함대 스페인 귀환, 지구 둥글다 입증

2023-09-07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522년 9월 7일 마젤란 함대가 스페인으로 귀환한 날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한 날이다. 하지만 마젤란은 필리핀에서 사망을 했기 때문에 스페인으로 함대가 들어가는 모습을 구경하지 못했다. 한번의 항해로 지구를 한 바퀴 돈 사람은 스페인의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로이지만 마젤란을 지구 한 바퀴 돈 사람으로 역사가들은 평가를 한다.

아시아로의 항로 개척

스페인으로서는 아시아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이미 포르투칼은 아프리카를 지나 희망봉을 거쳐 아시아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페인은 포르투칼에 막혀서 해당 항로를 개척할 수 없었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야 했다. 그런데 서쪽으로 가면 아메리카 대륙이 가로 막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로 진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쪽으로 나아가서 아시아로 가야 하는 그런 항로를 개척해야 하는 숙제를 스페인은 갖고 있었다. 그리고 마젤란은 그 숙제를 해결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에 마젤란은 포르투칼에게 서쪽으로 나아가면 인도에 닿을 수 있다는 항로를 제안했다. 하지만 포르투칼은 앞서 언급한대로 이미 아프리카를 지나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기 때문에 반응이 소극적이었다. 이에 마젤란은 스페인 국왕 카롤로스 1세를 만났다. 마젤란은 서쪽으로 나아가 남아메리카의 남단을 회항하면 인도에 닿을 수 있다고 설득을 했다. 카롤로스 1세는 5척의 선박을 포함한 항해자금 전액 지원, 발견한 영토에 대한 총독 직위 약속, 항해 수익 20% 분배 등을 약속했다. 포르투칼과 경쟁해야 하는 스페인으로서는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는 기대가 컸기 때문에 마젤란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된 것이다.

세계일주 시작

1519년 9월 드디어 마젤란이 이끄는 스페인 함대가 세계 일주 항해를 시작했다. 5척의 배와 270명의 선원이 스페인을 출발해서 라플라타강(지금의 우르과이)까지 가는 것은 수월했다. 하지만 두달 가까이 폭풍에 시달리면서 항해가 어려웠다. 또한 마젤란이 모난 성격 때문에 항해 관련 정보를 다른 함장들에게 교환하지 않으면서 다른 함대 함장들과 갈등을 빚었다. 원래는 그해 겨울에는 마젤란 해협을 발견해야 하는데 1520년이 되도록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선원들의 불만이 커졌고, 이에 반란이 발생했다. 마젤란은 신속하게 반란을 진압하고 주동자들을 처형했다. 이듬해 봄 마젤란은 결국 마젤란 해협을 발견한다. 이 과정에서 산티아고호가 난파됐고, 메스키타가 지휘한 산 안토니오 호는 결국 함수를 돌려 함대에서 탈주하고 만다. 두 척의 배를 잃은 마젤란 함대는 마젤란 해협을 지나 태평양에 진입한다. 태평양을 바라본 마젤란은 ‘Mare Pacificum’(평화로운 바다)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태평양이 된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어이 없는 마젤란의 죽음

평화로운 바다라고 명했지만 항해는 그야말로 험난했다. 왜냐하면 ‘섬’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는 섬을 발견해야 하는데 태평양은 그야말로 망망대해였다. 그리고 그들은 ‘괌’에 도착했다. 그런데 차모르족 원주민들이 마젤란 일행의 보트를 훔쳐갔다. 이 과정에서 차모르족 추장은 “우리 부족 중에 도둑은 없다”고 발뺌했다. 차모르어로 ‘없다’가 ‘Guaham’이고, 이것이 오늘날 괌이 된 것이다. ‘괌’을 지나 마젤란 일행은 필리핀 민다나오 섬 동부에 위치한 부투안 왕국에 닿았다. 부투안 왕국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매우 친절했다. 그리고 1521년 마젤란은 필리펜 세부 섬에 상륙해서 물과 식량을 공급받고 가톨릭 전파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세부 섬에서 통합국을 다스리던 국왕 라자 후마본과 의형제 관계를 맺고 막탄 섬 지배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막탄 섬 부족연합 촌장 라푸라푸(Lapu-Lapu)를 죽이겠다고 약속했다. 마젤란은 스페인 사람 60명과 세부인 200~3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갔다. 그리고 막탄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적은 1500여명이었다. 병력수에서 불리하게 되면서 결국 마젤란은 전사했다. 당시 기록은 알 수 없으나 수십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마젤란은 사망하고 마젤란이 이끌던 선박들은 항해를 계속해서 1522년 9월 7일 스페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했을 때는 선박 1척과 총 18명이었다. 필리핀을 지나고 나면 포르투칼이 개척한 항로이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스페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또한 몰루카 제도 티도르 섬에서 대량의 향신료를 싣고 귀향을 할 수 있었다. 함대는 스페인 출발한지 3년만에 스페인에 도착했다. 배 3척이 침몰하고 250여명의 선원을 잃어버리고 겨우 빅토리아호 한척만 스페인에 도착했지만 앞서 몰루카 제도 티도르 선에서 입수한 향신료로 모든 항해 비용을 상쇄했고, 오히려 이윤을 남겼다. 항해한 거리는 약 5만 4천 km로, 지구를 1.3바퀴 정도 도는 거리이다. 마젤란은 비록 필리핀에서 사망을 했지만 인류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