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굴비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전남도는 “영광지역 특산품인 굴비의 원재료인 참조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참조기양식 산업화 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조기 산업화 센터는 160억원이 투입돼 2025년까지 영광에 건립될 예정이다.
굴비는 조기를 해풍에 잘 건조한 생선으로 고급 선물로 취급되며 굴비 최대 생산지인 전남 영광군의 연간 굴비 판매액은 3500억원에 이른다.
굴비는 무게 100g 안팎의 참조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굴비는 예전에 비해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 한국 바다에서 잡히는 참조기의 85%가 100g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상품성이 떨어지고 있는 굴비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양식을 통해 대형 참조기를 대량 생산하는 ‘양식 산업화’가 추진되는 것이다.
이자겸의 굴비에서
굴비는 소위 밥도둑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졌던 인기식품이다.
굴비의 어원을 따지자면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인종 당시 엄청난 권력을 누볐던 이자겸이 난을 일으켰고 결국 영광 법성포로 유배를 가게 됐다.
이자겸은 자신의 딸들을 예종과 그의 아들인 인종에게 시집을 보내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인종은 이자겸을 부를 때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으로 불러야 했다.
그런 이자겸이 난을 일으켰고, 난을 함께 일으켰던 척준경에 의해 숙청되면서 영광 법성포로 유배를 가게 된 것이다.
이때 이자겸은 인종에게 소금에 절여 말린 조기를 진상했는데 굴비(屈非)라고 해서 보냈다. 즉,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소금에 절여 말린 조기를 굴비라고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청탁금지법에 묶인 생선
굴비는 청탁금지법에 묶인 생선이었다. 그나마 농수산물을 10만원 까지 허용하는 등으로 인해 숨통이 트였을 정도다. 그만큼 굴비는 귀한 생선이고 가격이 상당히 크다.
이런 이유로 명절 때 귀한 사람에게 선물용으로 굴비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린고비 설화이다. 궁픕한 선비들이 밥을 먹을 때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상 위에서 밥 한 숟가락 씹고, 굴비를 쳐다보는 것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워낙 귀한 생선이기 때문에 중국산이 판치기도 하면서 국내산 굴비 구별법 등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