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한국의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
2023-09-26 어기선 기자
색마라고 불리었던 박인수
당시 7천여명의 방청객이 몰려들면서 덕수궁 돌담길을 꽉 채워야 했고, 기마경찰대까지 출동했다. 방청권은 고위층 인사들이 요구하는 바람에 담당 판사는 자리를 피해야 할 정도였다. 그만큼 박인수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한 여성들이 많았다. 박인수는 공판 과정에서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해병대 대우였는데,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장교와 결혼한 것에 충격을 받아 그녀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부대를 무단 이탈했고, 불명예 제대를 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제대 후 박인수는 군 재직 시 해군장교구락부, 국일관, 낙원장 등 고급댄스홀을 드나들면서 익힌 사교춤으로 민간 댄스홀을 다녔다고 한다. 훤칠한 키와 떡 벌어진 어깨 등과 제대할 당시 반납하지 않은 군 장교 신분증 등으로 인해 여성들의 호감을 샀다. 능숙한 춤과 뛰어난 화술로 여성을 사로잡은 후 여관으로 직행하면서 문란한 사생활을 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1955년 5월 박인수와 관계를 맺은 한 여성의 오빠가 경찰관이었는데 혹시 결혼한 여성에게 해가 될까 박인수를 잡아들였고, 심문 과정에서 박인수의 행각이 드러났다. 박인수는 14개월 동안 70여성의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고 진술했다. 여성 대부분은 XX대학 여성이었고, 상류층이었다.댄스홀, 그것은 미국 유학의 욕망
여대생 특히 상류층 여대생이 댄스홀을 드나드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것은 미국 유학 때문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이 들어섰고, 1948년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정부의 실권을 장악해나갔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당시 상류층 여성들 역시 미국 유학길을 가는 것이 가장 큰 로망이고, 미국 유학길에 상류층 남성들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댄스를 미리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댄스홀이 성행을 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유학길에 오를 정도의 여성이기 때문에 집이 부자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댄스홀에는 춤선생들이 상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춤선생들과 상류층 여성과의 교제가 빈번하게 일어나기에 이르렀다.박인수 공판의 결말
경찰은 박인수를 법정에 세우려고 했지만 혼인빙자간음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고소자로 나서는 여성이 없었다. 겨우 6명으로 공판을 하기 시작했는데 1명은 미용사, 1명은 여고 졸업생, 4명은 XX여대생이었다. 재판 배당 받은 판사는 사석에서 “XX여대가 박인수 처가냐” 혹은 “장가를 갈려면 박인수의 여성관리 수첩에 이름이 있는지 보고 가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햇다. 박인수는 공판 과정에서 자신이 70여명의 여성과 관게를 맺었는데 미용사만 처녀였다고 증언을 하면서 여대생을 둔 전국의 부모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한 박인수는 결혼 약속이 없었고, 댄스홀에서 춤을 춘 후에는 여관에 가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에 혼인빙자간음죄는 해당 안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XX여대는 학생풍기확립책을 마련하라고 당시 문교부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1심에서는 공무원 사칭에 대해서만 2만환의 벌금을 부과했고,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선고 이유는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댄스홀에 가는 여성이라면 문란한 생활을 즐기는 여성이기 때문에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2심 판결에서는 혼인방지간음죄가 인정돼서 1년형 선고를 받고 다시 수감됐고, 대법원 상고 기각으로 유죄가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