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중석불 사건

2022-10-05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중석(重石)이라고 하면 텅스텐을 말한다. 무겁고 단단하기 때문에 주요 금속 중에 녹는 온도가 가장 높다. 이런 이유로 열에 강하기 때문에 대포 포신 같은 무기 제조의 필수품이다.

그런데 텅스텐 즉 중석의 매장량이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단연 으뜸이다. 특히 영월의 상동광산이 바로 그 곳으로 단일 광산으로는 세계최대 규모이며, 남은 매장량도 1,400만 톤 정도라 앞으로 60년 이상 캘 수 있는 규모이다.

1950년대 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중국에서 생산한 텅스텐을 서구유럽 국가가 쓰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텅스텐에 상당한 관심을 두게 됐고, 한때 우리나라 수출액의 60%를 담당하기도 했다.

현대적 의미의 정경유착 시초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텅스텐의 수출은 그야말로 날개 돋힌 듯 했다. 그러면서 중석불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1952년 3월 ‘한미중석협정’을 맺고 2년 동안 중석 1만 5천톤을 미국에 수출하기로 했다.

무역회사들은 자연스럽게 중석을 팔아서 달러를 획득하게 됐는데 이를 ‘중석불’로 불렀다. 정부는 중석불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도록 규정해놓았고, 주로 기계, 선박, 화물, 자동차 등 산업 부흥 자재의 수입 등으로 용도를 제한했다.

1952년 7월 정부는 농사철을 앞두고 비료와 식량을 긴급 도입하기 위해 중석불 등 합계 470만달러를 민간상사에 불하했다.

국무회의는 이 외화로 비료와 양곡을 도입해 농림부가 지정하는 가격으로 지정된 지역의 농민과 노무자들에게 배급하기로 의결했다.

부산정치파동 직후 불거져

중석불 사건은 부산 정치파동 직전에 불거진 사건이다. 부산 정치파동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헌법을 뜯어 고쳐서 대통령 선거제도를 국회에서 뽑는 간접선거가 아닌 직접 선거로 바꾼 것이었다.

당시 국회는 야당이 다수당을 차지했기 때문에 국회에서 간접선거를 치를 경우 이승만 대통령은 재선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 정치파동을 계기로 직접 선거로 바꾸게 되자 이승만 정부는 재선을 위해서는 정치자금이 필요했다.

그런데 농촌에서는 비료가 모자라고, 피난지 부산에서는 식량 부족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이에 중석불로 비료와 식량을 구입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문제는 중석불은 앞서 이야기한 용도 이외에 사용을 제한해 뒀다는 것이다. 이것을 풀어버렸고, 결국 중석불을 불하받은 민간무역업자들이 식량과 비료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다만 정부는 중석불로 들여온 식량과 비료를 반드시 정부가 제시한 공정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했다.

하지만 민간무역업자들은 그 규정을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비료와 식량을 시중에 내다 팔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정부에서 지정한 농촌이나 노동자에게만 팔 수 있게 했지만 민간무역업자들은 그런 말을 전혀 듣지 않앗다. 이런 이유로 밀가루 한 포대에 당시 금액으로 3만~4만원의 폭리를 취했다. 1952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폭리인 셈이다.

뒤늦게야 외화가 새어나가 폭리를 취한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국회는, 중석불 배정 과정에서 국회의 동의 절차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위법임을 내세우며 정치 쟁점화 했다. 결국 12명의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민간무역업자들이 폭리를 취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검찰은 수사를 했고, 기소내용에는 4개 기업이 40억원의 폭리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속 기소를 했다. 이에 야당에서는 40억원이 아니라 500억원의 폭리가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훗날 호사가들은 이미 중석불 불하로 인해 폭리를 취한 민간무역업자들은 다 빠져 나가고 4개 기업만 처벌을 받았다고 입방아를 찧고 있다.

이런 중석불 사건이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나타난 최초의 정경유착 사건으로 평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