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삼분폭리 사건
2023-10-06 어기선 기자
삼분폭리 사건이란
1963년은 유난히 태풍과 폭우가 잦으면서 대흉년이었다. 이에 쌀값은 폭등했고, 밀가루 수요가 늘어났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최초 라면인 삼양라면도 그해 9월 시판됐다. 쌀 한 가마니면 밀가루 여섯 포대를 살 수 있었지만 그해에는 쌀 한 가마니는 네 포대로 바뀌었다. 쌀값도 폭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밀가루 포대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밀가루 값이 엄청나게 폭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밀가루 값은 정부 고시 가격이 포대당 370원이었지만 시중 가격은 1200원까지 올랐다. 그해 836만 포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 43억원을 폭리한 것이다. 설탕 수요도 급증했는데 그해 포당 1200원에도 살 수 없게 됐다. 제당업체가 제일제당과 삼양사뿐이었고, 제일제당이 6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보였다는 점에서 제일제당은 당시 15억원 넘는 폭리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에는 시멘트 품귀 현상이 발생하면서 동양시멘트와 대한양회가 10억여원의 폭리를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것을 합쳐서 삼분폭리(밀가루, 설탕, 시멘트) 사건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독과점 시장 깨부수기 위해 공정위 출현
당시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지원 받은 미국의 원조 달러를 설탕, 밀가루 등 소비재 수입에 사용하면서 국내 소비시장을 장악했고, 독과점으로 폭리를 취했지만 정부는 기업의 뒷돈을 받고 이를 묵인해줬다. 결국 경향신문이 그해 12월 개원한 6대 국회가 밝혀야 할 주요 의제로 삼분폭리를 꼽는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에서도 삼분폭리 사건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에 박정희 정권은 경향신문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이후 강제매각 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정치권에서 삼분폭리 사건에 대해 다뤄지기 시작하면서 공정거래법 제정이 시도되게 됐다. 다만 1975년 석유 파동에 따른 물가 불안을 계기로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으나, 공정거래정책은 보조적 역할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