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MT

2023-10-07     어기선 기자
MT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MT란 대학과 직장인을 포함한 각종 사회적 모임에서 구성원들끼리 구성원간의 인지도, clsafeh를 높이기 위해 몇박 며칠 단위로 여행을 가는 것을 통칭한다. 이른바 Membership Training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다. MT는 주로 대학생들 위주로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 이후 대학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대학생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경제성장이 이뤄지면서 밖에서 캠핑을 하는 문화가 점점 자리매김하면서 MT 역시 함께 자리매김을 했다. 그러면서 MT는 다른 나라에 없는 독특한 우리의 문화가 됐다.

해방 이후 대학들이 속속 설립

1945년 해방이 된 이후 선지자들은 우리의 미래는 교육이라는 모토 아래 대학교를 속속 설립했다. 그러면서 서울 시내에 대학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인구에 비해 대학교가 턱없이 부족하면서 대학생은 이른바 엘리트 계급이 됐다. 문제는 대학생이라는 것이 이른바 등골 브레이커였다. 소를 팔아야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요하지 못했다. 그런데 196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들어서면서 점차 경제적인 성장이 이뤄지면서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점차 나아졌다. 이는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점차 부모님의 ‘소’에 의존하게 됐던 등록금 충당 방법도 아르바이트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대학생 스스로 돈을 벌어서 대학 등록금을 충당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러면서 대학생들이 점차 경제적인 사정이 나아졌다.

캠핑 문화의 도입

여기에 캠핑 문화의 도입이 이뤄졌다. 코펠로 불리는 ‘쿡 세트(cook set)’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조리 세트의 휴대가 점차 이뤄졌다. 여기에 부르스타로 불리는 휴대용 가스버너가 보급이 됐으며, 텐트로 불리는 천막의 보급도 이뤄졌다. 문제는 모든 집안에 코펠과 부르스타, 텐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집은 코펠을, 어떤 집은 부르스타를, 어떤 집은 텐트를 가지고 있으면서 해당 가정의 대학생들은 저마다 집에 있는 물건들을 갖고 여행을 하면서 MT가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하게 됐다. 만약 이런 장비가 없는 집안의 대학생들은 집에서 쌀, 김치, 라면 등을 갖고 오는 방식으로 해서 업무 분담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휴대용 턴테이블의 보급으로 인해 1970년대에는 휴대용 턴테이블까지 함께하는 MT 문화가 자리매김하게 됐다.

다양한 교통수단의 발달

통상적으로 서울 서부권역과 동부권역으로 나뉜다. 서울 서부권역은 인천광역시, 부천시, 김포시, 안산시에 위치한 대학교의 학생들로 주로 인천으로 MT를 떠난다. 대표적으로 을왕리 혹은 강화도이다. 이 지역을 주로 선호하는 이유는 펜션이 많기 때문이다. 서울 동부권역은 경춘선을 따라 가기 때문에 주로 가평, 강촌 등이다. 이런 이유로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 등이 MT 장소가 된다. 가끔 파주 임진각 등이나 충남 대천해수욕장 등이 MT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대중교통이 발달했을 때의 일이다.

부작용 속출

1970년대부터 MT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1980년대와 1990년대 거치면서 MT는 대학생들만의 특권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된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한다. 이른바 선배들의 얼차려 문화가 MT를 통해 발현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MT가 ‘먹고 토하고’라는 말이 있듯이 술을 마시는 것이 주된 이벤트이다. 그만큼 술에 젖어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또한 MT는 남녀의 애정행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MT가 사라진 근본적인 이유는 대학 내 불어 닥친 취업난 때문이다. 취업난 때문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스펙 쌓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MT 등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