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한반도 “비핵화”는 사기다

2023-10-11     백병훈
[파이낸셜리뷰] 한반도는 핵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2017년 이후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예상된다. 북한의 핵실험은 핵공갈 수준을 넘어선 실체성에 근거 한 핵무력 행사의 적극적 의사표현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 위협 정세는 북한의 핵실험 도발 의지에 기름을 붓고 있는 모양새다. 한반도에서 재래식 무기공격을 금하겠다는 1991년의“남북기본합의서”에 이은“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는 착시현상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북한은 현존하고 되돌릴 수 없는 세계 9번째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통상 NPT(핵확산금지조약)는 유엔안보리 이사국만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한다. 그러나 핵실험을 통해 출력 10kt 이상이 되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다. 북한의 2006년 1차 핵실험 당시 출력은 TNT 5~15kt이었다. 북한은 경제난과 가혹한 국제사회 제재 속에서도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자타가 공인하는 핵 강국으로 성큼 다가섰다. 전술 핵미사일의 실전 배치도 예상된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의 핵전력(核戰力) 전개를 금지한다는“한반도 비핵화선언”이래 오늘까지 국제사회의 모든 비핵화 노력이 무산되었음을 증명한 셈이 됐다. 그 과정에는 무언가 오류가 있었을 것이다.

“비핵화”라는 용어 자체가 잘 못됐다.

사전적 풀이로 “비핵화”는 De-Nuclearization로 표기된다. 그러나 국제사회는“비핵화”(非核化)를 군축이나 무장해제를 뜻하는 Nuclear-Disarmament라고 통용해서 사용했다. 이에 따를 때 비핵화 상태는 핵에너지의 무기화를 무력화시키거나 제거된“핵 진공”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순수 전력발전 목적의 1,000MW급 원자로에서 1년에 500파운드의 플루토늄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원자폭탄 1기 제조에 10파운드의 플루토늄이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원전 보유국은 정치적 판단 여하에 따라 핵무기를 생산해 낼 수도 있다. 따라서 행위의 범죄성을 특정해서 행위를 제한하는 상징적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뜻에서 군사적 목적의 핵무기를 실험하거나 개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데“비핵화”라는 용어로는 수렴될 수 없다. 군사적 목적의 핵개발을 특정하여 금지, 무력화시키려면 핵무기의 실험, 개발, 생산, 보유, 사용, 저장, 수송 등이 이루어지는 특정지역을“비핵무기지대(非核重武器地帶, 영어: Nuclear Weapons-Free Zone)로 표현하거나 최소한 “비핵지대”(非核地帶, 영어: Nuclear-Free Zone)로 불러야 맞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기존의“한반도 비핵화”를“북한 비핵화”로 수정한 것은 진일보한 것이지만,“북한 비핵지대화”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지 못하는 사연을 놓쳤다.

1989년 미 정찰위성이 영변 원자력연구소의 플로토늄 재처리 시설을 확인하자 북한은 4년 뒤 NPT를 탈퇴해 1차 핵 위기가 발생됐다. 이 때 북한은 미국측에 미⸱북관계 정상화와 상호 핵 불사용 평화협정 체결, 핵발전소 대체용 경수로 발전소 제공, 대체 에너지용 중유 공급을 요구했으며 미국이 합의했다. 이것이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제네바합의”였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을 방문한 미국측 인사들에게 비핵화의 조건으로 체제보장, 미국과 국교정상화, 경제제재 해제 등을 요구했다. 2018년의 일이다. 노동당 중앙위원회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 미사일시험발사 중지, 핵실험장 폐기를 결의해 김 위원장의 방침을 뒷받침 했다. 그리고 6차 핵실험을 끝으로 김 위원장이 핵 중단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고 보도한 것 등에서 북한의 다급한 입장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북한이 희망하는 비핵화의 조건은 당시 경수로 건설, 그리고 일관된 미⸱북 국교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 체제보장, 경제제재 해제가 핵심이었다. 그러면서도 핵과 미사일의 개발과 도발은 지속됐다. 작년 8차 당대회가 기존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삭제한 마당에, 북한이 금년 9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핵무력 정책을 입법화했다. 이런 조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핵무기 개발과 핵무력 강화를 위한 법적지위 부여는 물론 이른바“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할 정치적, 군사적 준비를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은 북한이 남조선해방이라는 이상과 체제보존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뇌를 거듭하고 있음을 뜻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핵무력의 사명이 국가의 주권, 영토완정, 근본이익 수호의 수단이라고 주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근본이익은 북한정권과 체제 수호를 의미하고, 영토완정은 미해방지역으로 남아있는 남한을 미국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조국통일대전”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비핵화”가 가능하겠는가? 핵 포기는 체제붕괴와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에 핵과 미사일의 요술 항아리를 스스로 깨뜨려 집어 던지지 못한다. 북한의 비핵화는 체제유지와 국가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현실적 도전이고 자기모순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터이다. 돌이켜 보면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들 중“6자회담”은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진행한 자기기만 행위였다. 무엇보다, 조만간 북한이 무너질 때까지 시간벌기용 경수로(輕水爐) 건설사업을 추진했다는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은 더 비인간적이었다. 그들의 잘못된 판단과 오류는 2005년 미 언론을 통해 폭로됐다. 그런데도 세상은 한반도 비핵화가 가능한 명제인 것처럼 떠들어 댄다. 북한체제의 진실과 작동원리를 모르는 소치다. 그런 의미에서“한반도 비핵화”는 허상이다. 자기희망에 찬 허상이 신념화되면 미필적 고의가 된다. 따라서“한반도 비핵화”는 사기다. 보다 실효성 있는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남쪽의“담대한 구상”과 북쪽의 “통 큰 결단”의 화학적 결합을 기대해 본다.

백병훈 약력

건국대 비교정치학 박사 국가연구원 원장 프라임경제신문 사장 한국정치심리공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