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일본 패망하게 만든 물고기, 정어리

2023-10-24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최근 경남 창원시 마산만 일대에 정어리 떼죽음이 발생하면서 그 원인을 두고 국립수산과학원과 제주대 교수의 공방이 벌어졌다. 수과원은 바닷속 산소부족이라고 그 원인을 설명했지만 정석근 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 교수는 혼획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산소부족으로 설명이 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정 교수는 이동이 불가능한 굴이나 조개 등이 집단 폐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 이동이 가능한 다른 어종인 멸치는 폐사하지 않앗다는 점을 들어 정어리만 폐사를 한 것에 대해 어부들이 혼획을 했는데 정어리가 혼획 금지 품목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수과원에서는 이동이 불가능한 패류는 산소가 많이 부족해도 살아남을 수 있고, 패류는 해류가 흐르는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바다의 단백질

정어리는 청어목 청어과 물고기로, 한국, 일본, 오호츠크해, 동중국해 등에 서식하고 있다. 바다의 단백질이라고 부를 정도인데 이는 주요 물고기의 단백질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백성들에게도 주요한 식량 중 하나였다. 이에 ‘우해이어보’, ‘자산어보’ 등에서 ‘증울(蒸鬱)’ 혹은 ‘대추(大鯫)’라는 이름으로 기롣돼있다. 다만 보관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많이 잡히게 되면 썩어나갔고, 그러다보니 썩은 물고기를 먹게 되면서 병에 걸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그 이유는 한번에 잡히면 너무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정어리는 떼로 다니기 때문인데 정어리 떼는 몇 km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몰려다니기 때문이다.
진주만

일본 패망하게 만든 물고기

정어리가 떼로 몰려다니기 때문에 한번에 잡히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어리가 잡히지만 잡히지 않을 때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기록에 의하면 1920년대 함경도 연안에 정어리가 출몰하면서 어부들이 함경도로 몰려갔다. 정어리가 너무 많아서 섬으로 오인을 했다고 할 정도였다. 게다가 300톤급 대형 어선이 정어리떼에 갇혀 항구를 빠져 나가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1937년 우리나라에서 정어리가 엄청나게 많이 잡혔다. 기록으로는 138만 8천톤이다. 단일어종 최대 어획고를 기록했는데 당시 일본은 잡은 정어리로 어유(魚油)를 만들었고, 이것을 군용 기름으로 충족했다.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동남아를 점령해나가자 미국은 위협을 느꼈고, 이에 일본에 석유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강행했는데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산 석유가 없어도 정어리로부터 나온 어유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43년 갑작스럽게 정어리가 사라졌다. 정어리가 어디로 갔는지 아예 보이지 않은 것이다. 트럭을 움직여야 하고, 배를 움직여야 하고, 비행기를 움직여야 하는데 기름이 없는 셈이다. 반면 미국은 군수물자를 계속 생산해냈고, 석유도 충분히 공급됐다. 일본은 기름이 모자르게 되면서 전선 곳곳에서 기름이 바닥났고, 이에 전선은 급속도로 축소돼야 했다. 이런 이유로 정어리를 일본을 망치게 한 물고기라는 뜻으로 ‘일망치(日亡稚)’ 혹은 ‘망국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