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뷰] 레고랜드發 돈맥경화 우려...정부 50조 긴급 수혈
2023-10-24 전수용 기자
회사채 시장 ‘후폭풍’ 거세
2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회사채 AA- 등급 3년 물의 금리는 전일 오후 기준 연 5.588%로 집계돼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날 BBB- 등급 3년 물의 금리도 연 11.444%로 연고점을 찍었다. AA- 등급과 BBB- 등급 3년 물 금리는 지난달 중순만 해도 각각 4%대, 10%대에 머물렀지만 레고랜드 사태가 터진 지난달 말 즈음에 각각 5%대, 11%대로 진입해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신용채권금리와 국고채 금리의 차이를 나타내는 신용스프레드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신용스프레드 확대는 기업 등의 자금조달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채권시장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회사채(AA-) 스프레드는 114bp(1bp=0.01% 포인트)로 2009년 9월 이후 최대 수준이다. 이는 과거 장기 평균(2012∼2021년 중 43bp)은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시 고점(78bp)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최근 최고 신용등급의 기업들마저 연이어 회사채 발행에 실패한 것은 시장의 경색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지난 17일 한국전력공사(AAA)는 연 5.75%와 연 5.9%라는 이례적인 고금리를 제시하며 4천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했으나 1천200억원 어치가 유찰됐다. 같은 날 한국도로공사(AAA)도 1천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으나 전액 유찰됐고, 과천도시공사(AA)도 최근 6%대 금리로 6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투자자를 찾지 못해 전액 유찰됐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올해 3분기 공모 무보증사채 수요예측은 5조5천억원 규모로 전년 동기 기록한 9조원 대비 39%나 급감했다. A등급 회사채는 8건, 6천5900억원 규모의 미매각이 발생해 미매각률이 58%에 달한다.레고랜드 사태 뭐길래?
레고랜드 사태는 지난달 강원도가 빚보증 의무 이행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레고랜드 사업 주체인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가 지난 2020년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SPC(특수목적법인)인 아이원제일차를 설립,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하고 강원도가 보증을 섰다. 이에 강원도는 GJC가 빚을 갚지 못하면 대출금 상환에 필요한 금액 상당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지만, 지난달 28일 보증 의무를 이행하는 대신 GJC에 대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사태는 지방자치단체에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높은 신용도를 부여해왔던 시장의 신뢰를 단번에 흔들어놨다. 현재 회사채 시장의 경색은 기본적으로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촉발된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이번 레고랜드 사태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회사채 시장의 불안감이 퍼지면서 증권가를 중심으로 중소형 건설사 및 증권사들의 부도설이 담긴 '지라시'(정보지)가 확산하며 공포심을 더욱 키웠다.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은 지난 6월 기준 112조원이고 PF유동화증권 등을 합치면 150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정부 긴급 수혈
정부와 한국은행은 23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50조원+α’ 규모의 시장안정 조치를 발표했다. 이날 회의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이창용 한은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이 참석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정부와 한은은 대내외 복합 요인으로 인해 현재의 시장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면서 필요시에는 가용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시장 불안에 적기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부 대책은 채권시장 유동성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총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조성해 투입할 방침이다. 우선 24일부터 채안펀드 가용재원 1조6000억원을 활용해 회사채와 CP 매입을 재개한다. 매입 대상에는 시공사가 보증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ABCP도 포함된다. 나머지 채안펀드 재원은 각 금융기관에 자금요청(캐피털콜)을 해 증액할 방침이다. 또한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의 회사채와 CP 매입 규모를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2배로 확대한다.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발행한 CP도 매입 대상에 포함한다. 한국증권금융 재원을 통해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에 3조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도 한다. 강원도의 지급보증 거부 사태 등의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추 부총리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보증 ABCP에 대해서는 모든 지자체가 지급보증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