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뷰] ‘째깍째깍’ PF 시한폭탄에 뻔뻔한 민낯 드러낸 증권업계

2023-10-26     전수용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전수용 기자] 레고랜드發 자금시장 혼란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국내 금융시장의 시한폭탄으로 등장했다. ‘부동산 시행업체(디벨로퍼)→PF 대출→금융업체 수익’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에 잡음이 생기면서 ‘줄도산 위기설’이 현실이 될 수 있어서다. PF 대출은 지난 10년 사이 3배 증가했다. 이 가운데 2금융권(보험사+여신전문회사+증권사)의 PF 대출은 73조3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결국 ‘50조원+α’ 수준의 돈을 풀기로 했다. 회사채와 단기자금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게 핵심이지만, 정부 일각에서는 ‘증권사 구하기’라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위험도 높지만 매력적인 PF

최근 ‘돈맥경화’의 시작점인 PF 위기에 떨고 있는 곳은 증권사와 보험·카드사 등 비은행권이다. PF 관련 은행 제재가 강화된 사각지대와 틈새를 파고든 곳이 이들 비은행권 금융사다. 그동안 PF는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먹거리로 여겨져 왔다. 평균 연 10% 안팎의 대출이자가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고 ‘기준금리 0%대’ 시절에도 5%의 이자를 챙겼다. PF가 금융업계의 뇌관으로 부상하는 데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PF는 부동산 사업의 ‘시작이자 끝’으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수백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부동산 사업비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 디벨로퍼 입장에서는 당장 큰 자본 없이 PF를 활용해 대규모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PF의 대출 근거가 사업 가치(사업성)라는 데 있다. 신용·담보를 기준으로 돈을 빌려주는 일반 대출과 달리 해당 업체가 ‘앞으로 지을 부동산의 미래 가치’를 ‘저마다의 기준’으로 평가한다. PF를 해 준 금융회사는 해당 사업의 시작인 토지매입부터 인허가, 착공, 분양, 입주까지 전 과정에 걸친 위험을 나눠서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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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 금융위기 때 ‘시한폭탄’으로 첫 등장

PF가 금융시장의 ‘시한폭탄’으로 부상한 것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다. 그 전까지만 해도 PF는 대개 시중은행(제1금융권)에서 취급했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은 자기자본이 충분하고 PF 진행 도중에 위험이 생겨도 은행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는 PF의 기본 전제가 건설사(시공사)의 지급보증이었다. 해당 사업 진행에 차질이 생겨도 건설사가 대신 빚을 갚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대우건설 등 건설업계의 줄도산이 이어지면서 재무건전성이 악화하자 건설사의 지급보증은 매력이 떨어졌다. 건설사도 지급보증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완공에 대한 의무만 지겠다는 책임 보증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은행 입장에서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커진 셈이다.

은행 중심이었던 PF, 비은행권으로 이동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12년 37조5000억원에서 지난 6월 말 기준 112조2000억원으로 세 배로 늘었다. 2012년 전체 PF 대출 잔액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65%였지만 현재는 25%에 불과하다. 커진 위험부담에 은행이 몸을 사리는 틈을 비은행권인 보험·증권·여전사 등과 저축은행·캐피털 등이 파고들었다. 2012년 13% 수준이었던 보험사의 PF 대출 비중은 10년 만에 38%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여전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7.4%에서 23.7%로 뛰었다. 업계에서는 PF 비중이 커진 보험·여전사보다 증권업계를 우려한다. 자기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 증권사일수록 PF 의존도가 높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24곳)의 자기자본 대비 PF 비중은 평균 39%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연체율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4.7%다. 지난해 말(3.7%)보다 1.0%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2019년 말(1.3%)과 비교하면 세 배 넘게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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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의 뻔뻔한 민낯

이번 정부의 대책에는 ‘돈 가뭄’에 시달리는 증권사에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증권사가 발행한 각종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도 사주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늑장 대응에 증세가 악화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 내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증권업계가 호황 때는 고위험 투자로 실적 잔치를 벌이다, 위기가 오면 정부에 긴급하게 손을 벌리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그동안 일부 증권사는 저금리와 부동산 경기 활황 속에 PF로 쏠쏠한 수익을 올려왔다. 증권사가 PF 등에 채무 보증을 하고 받은 수수료도 급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A증권사의 채무보증수수료 수익은 2019년 2분기 2억원에서 지난 2분기 315억원으로, 같은 기간 B증권사는 32억원에서 471억원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돈이 되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졌고, 변제 순위 후순위에도 투자를 감행하는 등 위험한 투자도 늘어났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중소형 증권사 15곳 중 3월 말 기준 증권사의 부동산 금융 중 손실 위험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는 금액이 자본 대비 20%가 넘는 곳은 4곳이었다. 다올(26%)과 하이(26%), BNK(22%), 교보(21%) 등이다. “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이 한 유명한 말이다. 이 말에 대해 금융시장에서는 유동성의 거품이 꺼진 이후 건전성 등 기초체력(펀더멘탈)을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 민낯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국내 증권회사의 민낯을 제대로 확인할 시간과 기회는 오지 않을 듯하다. 여론에 등 떠밀린 정부가 물이 빠질 때마다 금융사의 벌거벗은 몸이 드러날까 신속하게 물을 채워주고 있어서다. 유동성 자금 확보가 시급한 현재 상황에서 위기에 빠진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옥석 가리기 없이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회사까지 페널티 없이 살려준다면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를 부추기고 장려하는 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