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4일 가갸날(한글날) 제정

2023-11-04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26년 11월 4일 오늘날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해 기념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훈민정음 관련 기사가 1446년 9월 말일(29일)에 실렸기 때문에 11월 4일에 기념식을 열린 것이다. 가갸날에서 한글날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28년이다. 가갸날이 한글날로 바뀌고 오늘날 10월 9일로 바뀌게 된 것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훈민정음 혜례본으로

11월 4일로 정한 것은 엄연히 조선왕조실록의 기사 때문이다. 9월 말일로 기록돼 있기 때문에 음력 9월 29일로 추정했고, 이것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니 11월 4일이었다. 그런데 1931년 음력 9월 29일을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면서 1932년부터 10월 29일로 행사를 치렀고, 1934년 율리우스력으로 다시 환산해 1945년까지 10월 28일로 행사를 치렀다.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됐고, 발간 날짜가 음력 9월 상순으로 기록돼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에 상순의 마지막날인 9월 10일(음력)으로 상정했고, 음력 1446년 9월 10일을 율리우스력으로 변환해 10월 9일을 기념하게 됐다. 다만 조선어학회 사건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붙잡히면서 한글날 행사를 할 수 없었다. 1945년 독립 이후 10월 9일을 한글날 행사로 진행했으며, 1949년에 ‘관공서의공휴일에관한건’을 처음 제정할 때부터 공휴일로 지정됐다.
사진=문화재청

공휴일 지정 해제와 재지정

한글단체들을 중심으로 진행했던 한글날 행사가 1981년부터 정부로 이관됐으나 1991년부터 한글날을 국경일 겸 법정 공휴일이 아닌 일반 기념일로 바꿨다. 10월에 공휴일이 많기 때문에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러자 한글날을 국경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시위가 일어났고, 한글학회 등 한글 관련 단체들의 각고한 노력으로 2005년 12월 8일 국회 본호의ㅔ서 ‘한글날 국경일 지정 법안’이 통과되면서 2006년부터 국경일로 바뀌었다. 하지만 국경일로 격상되었어도 다시 공휴일이 되지는 않았고, 2009년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도 강했다. 2012년 가을에 다시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이 발의된 후 2012년 12월 28일에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의 재지정이 확정됐으며, 2013년부터 정식으로 다시 공휴일이 됐다.

공휴일 지정 경제적 효과

1991년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이 아닌 일반 기념일로 전환된 것에는 당시 경제단체들의 입김이 작용했다. 10월이면 추석 연휴가 있고, 10월 1일 국군의 날, 10월 3일 개천절 등이 있기 때문에 쉬는 날이 많기 때문에 생산 유발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 경제단체들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당시 3저 호황이 막을 내리면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우리 경제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경제단체들은 한글날을 법정 공휴일이 아닌 일반 기념일로 바꾸자고 요구를 한 것이다. 그러다가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로 바꾸게 되면 경제적 효과가 유발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점차 법정 공휴일로 전환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컨대 한국관광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발표문에서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면 생산유발 효과가 1조 8010억~4조 3224억원이고, 일자리 창출 효과가 1만 7919~4만 3005명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쉬는 날이 늘어나게 되면 여행이나 문화 활동이 증가하기 때문에 소비 지출이 늘어나 내수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1991년 당시만 해도 제조업 위주의 산업이었지만 점차 제조업 위주가 아니라 서비스업 위주의 산업이 성장하면서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면 그만큼 생산 유발 효과가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