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7일 러시아 10월 혁명 발발

2023-11-07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17년 11월 7일은 러시아 10월 혁명 발발일이다. 당시 러시아는 율리우스력을 따르기 때문에 10월 25일이었다. 이런 의미로 10월 혁명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레고리력으로 따지면 11월 혁명이 되는 셈이다. 10월 혁명은 2월 혁명과 더불어 러시아제국을 무너뜨리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이 탄생하게 됐다. 2월 혁명에서 승리한 정당들은 러시아 공화국을 선포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볼셰비키가 10월 혁명을 일으키면서 러시아 공화국이 무너지고 혁명의 과실을 독점하려고 했다. 하지만 멘셰비키 등 반대파들이 무력 대항을 시작하면서 러시아 내전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 성장

러시아는 19세기 중엽부터 자본주의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1860년부터 1900년까지 공업 생산량이 7배 이상 증가했다. 공업 생산량이 빠르게 증가했다는 것은 도시 노동자의 숫자도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계속 비참했다. 그것은 최저임금을 받고도 고강도 노동시간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인권이 없으면서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런 이유로 오데사와 키예프의 남부동맹,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북부동맹 등의 정치조직이 연달아 탄생했다. 그러면서 1870년대부터 파업이 번져 나갔다. 하지만 부르주아들은 여전히 편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에 노동자와 부르주아의 대립이 극에 달았다. 이런 가운데 로마노프 왕조에 대한 불신이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가혹한 노동환경이 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공산주의가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공산주의는 1840년대부터 러시아에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러시아 지식인들은 공산주의를 접하면서 이상주의 국가 건설에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진=픽사베이

니콜라이 2세 새로운 황제로 등극

여기에 알렉산드르 3세가 사망하고 아들 니콜라이 2세가 제위를 물려받아 새로운 황제로 등극했다. 니콜라이 2세는 알렉산드르 3세보다 더 강한 군주제를 원했다. 당연히 노동자 계급과는 충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니콜라이 2세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통제했고, 교육에 제한을 가했다. 그러자 공산주의자들은 반발하고 나서면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여기에 부르주아지는 러시아를 개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러시아 전제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러일전쟁 패배의 충격

그런데 러시아에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그것은 러일전쟁이었다. 러일전쟁의 패배는 러시아 제국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30년도 안된 일본제국에게 패배한 러시아는 남사할린을 할양하고, 대한제국 영향력을 상실하는 굴욕을 안아야 했다. 이는 공산주의자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자들도 군주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즉, 공동의 목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파업 등을 진압해야 할 군대 역시 러일전쟁 패배의 충격으로 인해 진압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 군주제가 무너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