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조선시대 흙수저 이진욱, 거부(巨富)가 된 사연

2022-11-09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조선 후기 문인 식니당(食泥堂) 이재운이 발간한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에는 이진욱이라는 사람의 사연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진욱은 한양의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 출신으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에게 의탁해 지냈는데 이웃에 사는 부자 노인이 은전 1천냥을 주자 거부가 됐다. 일몽 이규상이 쓴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도 이진욱의 사연이 기록돼 있다. 이런 이유로 단순히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인물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실재로 존재했던 자수성가형 부자가 아니었겠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흙수저가 거부가 된 사연

이진욱은 고아 출신의 빈털터리었는데 매우 성실했다고 한다. 그것을 눈여겨본 이웃집 부자가 은전 1천냥을 주면서 돈을 불려보라고 권했다. 이진욱은 이 돈으로 동래 왜관에 가서 왜인 모슴을 동업자로 발탁하면서 그에게 돈을 맡겼다. 왜인 머슴은 일본에 가서 장사해서 세곱절로 재산을 불렸다. 그렇게 불린 재산을 이진욱은 국제무역 종사하는 이들에게 20%의 이자를 받고 자금을 빌려줬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3만냥을 털어 서북 지역 인삼을 매점매석했다. 그러자 전국적으로 인삼 품귀현상이 빚어졌고, 이진욱은 인삼 3/1을 왜인 머슴에게 주면서 일본으로 가서 조선통신사를 기다리라고 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가져가야 할 인삼이 없으면서 조선통신사는 발을 동동 굴렀는데 이진욱은 조선통신사에게 “어떻게든 구해보겠다”면서 그냥 일본으로 떠날 것을 요구했다. 이진욱을 믿은 조선통신사는 일본에 도착했는데 왜인 머슴이 인삼을 안겨줬다. 이에 조선통신사는 이진욱을 신뢰하게 됐다.

화류계 장악

이진욱은 그렇게 조정과의 관계를 맺은 후 한양의 화류계를 장악해서 권력자들에게 위세를 과시하게 됐다. 하지만 약자에게 한없이 돈을 베풀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품계가 오르면서 자헌대부 지중추부사로 승직했다. 정2품까지 오른 것이다. 이진욱이 사망했을 당시 장례식장은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하고 중국과 일본 상인들도 부의금을 보냈다고 기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