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뷰] 역대급 돈의 이동 시작됐다
2023-11-10 전완수 기자
정기예금 잔액 20년 만에 최대 증가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931조6000억원으로 전달 대비 56조2000억원 급증했다. 이는 2002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20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올해 1~10월 정기예금에는 187조5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전년 동기 기록한 33조원 대비 무려 5.7배로 폭증했다. 반면 수시입출식 예금에서는 뭉칫돈이 빠져나갔다. 지난달에만 44조2000억원의 자금이 이탈했다. 지난 7월 기록한 53조3000억원 이후 가장 큰 폭의 잔액 감소다. 이같은 상황은 큰 폭으로 뛰는 정기예금 금리 때문이라고 한국은행 측은 진단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은행의 자금 유치경쟁 영향이다. 지난 9월 정기예금 평균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3.35% 수준이다. 10월 들어 시중은행 간의 자금유치 경쟁이 펼쳐지며 연 5%가 넘는 정기예금도 속속 등장했다. 이에 발맞춰 대출 금리는 더 크게 상승하는 모양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정기예금 잔액이 늘어나면 은행의 조달 비용이 증가해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변동금리 대출의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예·적금 금리의 반영 비율이 가장 높다.가계대출 줄고 기업대출 늘고
대출 금리가 오르며 가계대출은 계속 감소세다. 10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58조8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6000억원 줄었다. 10월에 가계대출이 줄어든 것은 처음이다. 올해 1~10월 전체 가계대출은 1조8000억원이 줄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올해 말에는 연간 기준 처음으로 가계대출이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처럼 가계대출이 줄어드는 반면 기업대출은 늘고 있다. 지난달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13조7000억원 증가한 1169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0월 기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9년 이후 최대치로, 자금시장의 ‘돈맥경화’로 회사채 발행 등이 여의치 않자 기업이 은행 문을 두드린 영향이다. 기업대출 중에서는 대기업 대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10월 대기업 대출은 9조3000억원 늘며 중소기업 대출 증가 폭(4조4000억원)의 배 수준이었다. 대기업 은행 대출 증가 폭이 중소기업보다 큰 것은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 3월 이후 처음이다.CP로 몰리는 자금 수요
회사채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자금 수요는 기업어음(CP)으로 몰렸다. 발행 부진이 이어지며 지난달 회사채는 3조2000억원의 순상환이 이뤄졌다. 순상환 규모로는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반면 CP의 경우 지난달 순발행(3조1000억원)으로 돌아섰다. 자금 경색에 SK 등 대기업까지 CP 발행에 나선 결과다. CP 물량이 쏟아지면서 신용등급이 가장 높은 A1등급 CP(91일 물) 금리도 이날 연 5%를 넘어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일 CP 금리는 전날보다 0.04%포인트 오른 연 5.02%를 기록했다. CP 금리가 연 5%를 넘은 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지난 2009년 1월 15일(5.0%) 이후 13년 10개월 만이다. 지난달 4일 연 3.31%에서 한 달여 만에 1.71%포인트가 급등했다. 단기자금 시장 불안이 계속되자 시중은행은 CP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주요 시중 은행장들은 9일 오전 김주현 금융위원장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 지난달에도 4조3000억원 어치의 CP와 ABCP 등을 매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