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카타르 월드컵’의 열광과 비애(悲哀)

2022-11-22     백병훈
[파이낸셜리뷰] FIFA 월드컵 대회가 카타르 수도 도하(DOHA)에서 드디어 개막됐다. 1930년 첫 대회 이후 22번째이자,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겨울철에 열렸다. 최초로 중근동지역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서 카타르는 개최국으로서 첫 출전이라는 기록도 남기게 됐다.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이번 대회는 결승전이 열릴 국립경기장을 비롯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건설한 8개의 초현대식 경기장에서 열린다. 역시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국의 막강한“오일 머니”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렇게 준비된 월드컵은 나라, 인종, 성별, 연령 차이를 떠나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는 가운데 세계인을 열광케 할 것이 분명하다. 이번 대회가 장기간의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세계경제 악화 등으로 우울했던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에게 활기를 되찾아 주는 축제가 되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세계인이 열광할 카타르 월드컵에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 이를 어떻게 해명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마디로 카타르 월드컵의 화려한 무대와 전 세계 수십억 축구 팬들의 열광 속에는 외국 이주노동자 수천 명의 희생과 가혹한 노동착취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계의 양심과 언론이 가차 없는 질타에 나섰다. 대회는 성사되어야겠지만, 이런 비난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살피는 것은 축구 팬이 아니어도 사람으로서의 도리이다. 이를 암시하는 조짐이 있었다. 호주 선수들이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은 방송에 출연하여 이주 노동자들의 죽음과 인권문제를 따졌다. 덴마크 선수단은 희생자들의 애도 표시로 검은색 유니폼을 착용했고,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선수들은 유니폼에 인권 구호를 새겨 넣었다. 세계적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트워치’는 FIFA가 인권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FIFA와 카타르 정부를 향해 비난과 성토를 쏟아 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카타르 인구는 2020년 기준 288만 명이다. 이중 카타르 국적인은 불과 13%에 불과하고, 87%는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한 국가의 존재와 국가운영이 이주외국인에게 크게 의존하는 나라이다. 돈 많은 산유국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런 카타르가 월드컵을 앞두고 약 173조 원을 들여 사막에서 경기장, 도로, 철도, 교통 인프라, 호텔 등을 지었다. 이 공사에 120만 명의 노동자들이 투입됐다. 인도, 파키스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필리핀, 북아프리카 출신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UN 안보리 보고서는 외화벌이를 위해 2,500~2,800여 명의 북한 노동자들도 투입됐으나 수천 명이 임금도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 뿐이 아니다. 지난달 31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10년간 카타르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현지에서는 불법인 수십억 달러의 소개비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고 폭로했다. 이윽고 ‘가디언’을 필두로 세계 언론과 국제 인권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월드컵 공사에 투입된 이주노동자들의 통계를 집계한 결과 2010년 이후 6,75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월드컵 유치 후 카타르에서 매년 600명 이상이 죽어 나간 것이다. 이것이 문명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영국 ‘데일리 메일’은 10일,“카타르가 집계한 사망자는 고작 37명”이라면서 개탄했다. 물론, 외국 근로자를 불러 모아 건설공사에 투입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카타르 공사현장이 적절한 안전관리와 노동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심케 한다는데 있다. 모든 근로자는 노동에 대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사막의 뜨거운 열기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공사현장에서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그런다 해도 카타르 당국은 이를 단순 자연사나 심혈관질환으로 치부하며 적극적 예방조치나 사망원인의 조사, 부검 등은 아예 꿈도 안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데일리 메일’은“월드컵이 피로 물들었다.”고 까지 표현하면서 카타르와 FIFA에 책임을 묻고 있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도 이런 사태를 이미 예견하고, 방치할 경우 2022년에 약 4,000명이 희생될 것이라고 년 전부터 경고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래서야 경기장에서 환호와 열광이 진동할 수 있겠으며, TV 앞에서 소리 높여 응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겠는가? 뭔가 크게 잘못 됐다. 얼마 전, 인판티노 FIFA 회장은 노동착취 논란에 대해 오히려‘노동자들이 노동에 보람을 느낄 것’이라고 말해 전세계적인 뭇 매를 맞았다. 이런 와중에 4일에는 참가팀에 편지를 보내“축구가 이념적⸱정치적 싸움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며 밑도 끝도 없이, ‘세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다양성’이라고 말해 거센 반발을 자초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고 싶은 ‘다양성’이란 무엇일까? 설마 우열이 가려지는 여러 피부색깔, 일상이 되어 버린 삶과 죽음, 결코 같이 할 수 없는 부와 빈곤, 그리고 바람처럼 흩어질 비난의 소리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지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이럴까? 결국, 개막식을 목전에 앞두고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준비과정에서 많은 근로자가 신체적⸱정서적으로 가혹한 환경에 내몰렸다"고 고백하고 불법적인 가혹한 노동사례를 인정했다. 그러나 FIFA는 보이지 않는다. FIFA는 이번 대회로 약 4조 9,00억 원의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차마 그것이 6,750명 이상의 ‘죽음의 댓가’가 아니 길 바란다.

백병훈 약력

비교정치학 박사 경제신문사 주필, 사장 한국정치심리공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