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백정(白丁)

2023-11-24     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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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백정(白丁)은 전근대 우리나라에 있던 계층에 대한 호칭이다. 흔히 도축업자를 백정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임꺽정은 도축업자가 아니라 유기를 만드는 백정이었다. 즉, 조선시대 백정이라고 해도 모두 도축업자가 아니었다. 백정은 노비보다 사회적 인식이 더 나빴다.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를 관통하면서 백정은 사회적 문제로 인식됐다. 그것은 하나의 장소에 정착해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떠돌이 유랑민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는 중앙집권사회이기 때문에 백정들의 잦은 이동은 사회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실제로 기록을 살펴보면 살인 범죄자 상당수가 백정이었다.

도축업자=백정? 사실 아니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은 백정하면 도축업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백정을 흔히 ‘직업’에 따른 구분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이 아니다. 백정 중에 도축업자도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고려시대까지 ‘백정’이라고 하면 자기 조상 대대로 자신의 땅을 갖고 농사를 짓는 자영농을 칭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정을 고려시대에서는 양수척(楊水尺), 수척(水尺), 화척(禾尺), 무자리라고 불렀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이 즉 유랑민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북쪽 이민족을 많이 받아들였다. 대표적으로 거란족, 여진족 등을 받아들였다. 거란족이나 여진족은 ‘반농반목’의 습성이 있다. 즉, 가축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가축의 이동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고려땅 한 곳에서 정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여몽항쟁 당시 몽골군이 쳐들어오면서 전국토를 유린하게 되면서 자신의 땅에 정착해 살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러면서 유랑민이 될 수밖에 없다. 유랑민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직업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농사보다는 사냥, 도축, 축산, 가죽제품 제작(갖바치), 예악/배우, 망나니 등으로 생계를 꾸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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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때 이들 정착시키려고 했지만

조선시대 들어오면서 이들의 유랑생활을 종식시키기 위해 부던히 노력을 했다. 조선의 백성이라는 의미로 ‘백정’이라는 계급의 이름을 부여했다. 그러면서 농사일을 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이 일반 농민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남녀노소 말을 타고 유랑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강제로 정착일 시켜 개간을 하자니 중앙정부의 지시를 거부하게 됐다. 그러면서 반체제 집단으로 변질됐다. 결국 기존 마을 공동체와는 별개의 집단이 된 것이다. 이에 살인, 방화, 강도, 절도 등등을 일삼기도 했다. 세조 때에는 “백정들이 도둑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과거 시험 문제인 책문으로 출제됐다. 중종 때는 한양 인근까지 백정 도적떼가 출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조정은 백정들이 일반 백성들과 융화돼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백정들은 무리를 지어 범죄를 저질렀고,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임꺽정이다. 임꺽정이 조선 왕조의 수탈과 백정에 대한 천대를 못 견뎌서 민란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되지만 실상은 백정의 습성이 고스란히 배여 있었기 때문이다. 백정이 도축업자로 인식되게 된 것은 조선시대 성종 때까지 양인들이 도축업을 도맡았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농업국가였기 때문에 소를 소중하게 다루기 시작하면서 도축업을 금지하게 됐다. 그러면서 양민 도축업자들이 몰락하게 됐다. 백정은 치외법권 사람이기 때문에 도축업을 한다고 해도 조선 관리들이 그들을 처벌할 수 없었다. 이러면서 도축업자=백정이란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게 됐다. 하지만 누차 이야기를 하지만 모든 백정이 도축업자는 아니었다. 즉, 모든 도축업자는 백정이지만 모든 백정이 도축업자는 아니다. 백정들이라고 해서 모두 천대 받은 것은 아니었다. 성균관에 제사용 및 식용으로 육류를 납품하던 백정들이 살던 반촌의 경우 유생들과 교류가 잦았고, 그 유생들이 훗날 고관대작이 되면서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왔던 것을 계기로 일반 양인보다 대접을 더 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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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보다 더 부자인 경우도

백정들이 비록 도축업 등 양인들이 천시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해도 상당한 부자인 경우가 많았다. 수익이 많다고 해도 신분상 옷차림이나 집의 수준을 규제하기 때문에 돈을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형평운동으로 신분을 벗어나고자 상당한 애를 썼다. 구한말에는 만민공동회에서 연설을 했고, 백정들이 고위층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백정이란 신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백정들이 사는 마을마저도 사라지면서이다. 또한 능력만 있으면 대접을 해주는 자본주의가 물 밀 듯이 들어오면서 굳이 신분을 차별하는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백정이란 신분 자체가 사라졌다. 다만 백정이란 용어는 아직도 남아 있으면서 백정이란 단어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