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캐리비안 해적

2022-11-25     어기선 기자
캐리비안의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캐리비안 해적은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해적을 말한다. 이들은 1690년부터 1730년대까지 카리브해를 누비면서 주로 상선을 약탈했다. 다만 유명한 해적들이 실제로 날뛴 시기는 1714~1722년 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해적들 상당수가 이 시기에 카리브해에서 활동했던 해적들이다. 이들은 상선을 약탈하고, 약탈한 물자를 되파는 수법을 통해 부를 축적해 나갔다. 그러면서 유럽에서는 상당히 골칫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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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 무역 시대 열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카리브 지역을 중심으로 사탕수수 플랜트 농업을 했다. 이에 많은 유럽인들이 카리브 지역으로 이주를 했다. 문제는 사탕수수를 재배할 일꾼이 필요했다. 이에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약탈해서 노예로 삼고, 그 노예를 노예선에 태워 카리브 지역으로 보내고, 그 노예가 재배해서 생산한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들어서 유럽으로 되파는 삼각무역 시대를 열었다. 이에 아프리카로 오가는 노예선, 그리고 설탕을 싣고 유럽으로 향하는 무역선, 그리고 유럽의 물자를 카리브 지역으로 옮기는 화물선이 빈번하게 왔다갔다 했다. 그야말로 해적들이 출몰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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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선 노린 이유는

화물선을 노린 이유는 화물선이 돈이 됐기 때문이다. 노예선을 털어 확보한 노예를 농장주에게 싸게 공급하기도 하고, 유럽으로 향하는 설탕을 실은 무역선을 털어 유럽에 싸게 내다팔기도 하고, 유럽에서 카리브 지역으로 향하는 화물선을 털어 카리브 지역 농장주 등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한다. 즉, 시중보다 싼값에 물건을 공급함으로써 이득을 얻은 것이다. 이처럼 카리브해에 해적들이 출몰했던 이유는 우선 스페인의 공격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식민지 농장주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을 했다. 당시 아메리카는 스페인이나 영국 등의 식민지였다. 특히 영국의 식민지의 경우 그들의 항로를 스페인 함대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영국에서 함대가 와야 한다. 하지만 너무 멀리 있었다. 게다가 영불전쟁이나 영란전쟁으로 인해 영국 본국이 영국 식민지를 지켜줄 힘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영국 식민지 농장주들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해적들을 키워서 그 해적들로 하여금 스페인 함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게 했다. 영국 정부 역시 핵적들을 전략적으로 키워서 스페인 함대로부터 식민지를 보호하게 했다. 또한 해적들이 식민지 총독에게 장물 일부를 떼어주기도 했다. 일종의 뇌물을 바친 것이다. 이에 식민지 총독들은 이들 해적의 활동을 눈감아 주기도 했다.

미합중국 건국하면서

그런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불전쟁과 영란전쟁 등이 종전되면서 영국 정부는 더 이상 해적들에게 카리브해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미합중국의 독립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이 건국됐다. 건국 초기에 미국은 해군보다는 육군에 치중했다. 하지만 점차 해군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해군 창설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카리브해 해적들로서는 영국과 미국이라는 두 나라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점차 카리브해에서 해적들이 물러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