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전차(電車) 그리고 마포종점
2022-11-28 어기선 기자
쇠당나귀가 달린다고???
전기 트램의 첫 발명은 독일의 지멘스이지만 실용화는 미국이 1887년에 이뤄졌다. 전차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저렴한 시설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송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차철도의 경우 대량의 운송을 할 수 없었지만 전차는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운송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차철도에 비하면 효율이 뛰어났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교토가 1895년에 교토 전기 철도가 개통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1899년 서대문-청량리 구간이 처음으로 개통됐다. 당시 개통식에는 쇠당나귀로 불리는 신문물이 달린다는 것에 신기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고종 황제를 태운 꽃전차가 외국 외ㅛ관 및 고관대작을 태우고 서대문을 향해 움직였다. 전차 궤도 건설은 미국 자본의 한성전기회사가 맡았고, 한성전기회사가 일본 교토전철회사에 설계와 공사를 의뢰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궤도 부설은 일본 기술력으로 이뤄졌다. 운전은 일본인들이 도맡았다. 비가 오면 운행을 하지 않았고, 정류장과 매표소가 따로 있었지만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 그곳이 정류장이 됐다. 따라서 운행시각 준수는 힘들었다. 이러다보니 사건 사고도 많았다. 전차 개통 사흘 만에 종로에서 어린이가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사고를 낸 일본인 운전사가 도망 가버렸다. 이에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전차를 불태웠고, 반일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여름만 되면 막차가 지나간 후 돗자리를 깔고 철재 선로를 배게 삼아 잤다. 철제 선로이기에 시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01년 선로에서 누워 잠을 자던 두 남자가 운행을 끝내고 오는 전차에 치여 사망을 했다. 이에 또 전차가 불태워졌다. 아울러 1904년 일본군이 서울의 전차를 자기들 마음대로 빼앗아 타는 일이 발생했다.노면전차 시대 종언 알린 마포종점 노래
전차는 일제강점기 당시 유용한 교통수단이 됐다. 이에 청량리-서대문까지 운행했던 전차가 마포까지 이어지면서 마포종점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던 것이 해방 이후 교통이 발달하면서 전차가 점차 쇠퇴했다. 버스와 승용차의 보급은 노면전차가 교통의 방해가 됐다. 마포종점의 위치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20, 5호선 마포역 근처 현 불교방송 본사 사옥터다. 이 터는 3.1 운동 당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주요 장소이기도 하여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비행장이 여의도(현 여의도광장)에 있었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마포종점까지 전차를 타고 내려서 배를 타고 여의도 비행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양화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 영등포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한강대교를 건너가거나 아니면 역시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따라서 마포종점은 항상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던 것이 해방 이후 1968년 11월 서울전차가 폐선됐다. 전차 차량의 노후화 등도 있었지만 버스에 비해 수송 분담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하철 1호선 계획안이 세워지면서 굳이 노면전차가 다닐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면전차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그 아쉬움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