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택배, 그 시초 전쟁 ‘CJ대한통운’ vs ‘한진택배’

2023-12-13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우리 국민 한명은 1년에 70.3상자가 넘는 택배를 주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 국민은 일주일 평균 택배를 1.4회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0년 2.4개 상자에 비하면 30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경제활동인구 기준으로 보면 1인당 연간 128.2개 상자를, 주당 2.5회 택배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창맨

CJ대한통운 그리고 미창맨

CJ대한통운은 역사가 90년이 훌쩍 넘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우리나라 최초 택배맨이 90여년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내 물류의 시작은 1930년 4월 1일 문을 연 조선운송주식회사와 같은 해 11월 15일 영업을 시작한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부터이다. 이것이 오늘날 CJ대한통운이 됐다. 현대적 의미의 택배가 시작된 것은 1962년 한국미창은 서울에 7개, 부산에 4개의 화물취급소를 개설하면서 사업에 나섰다. 이때 노란색 조끼를 착용하고 손수세를 이용해 화물을 배달하면서 ‘미창맨’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또한 1984년 10월 서울 지역에 한해 소화물 집화 배달서비스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1993년 택배 서비스에 나섰다.

브랜드 시초는 한진 파말마

다만 국내에 처음 등장한 택배 브랜드는 1992년 한진에서 선보인 ‘파발마’였다. 오늘날 개념의 택배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한진 파발마인 셈이다. 한진 파발마는 일본 ‘야마토 운수’의 택배사업을 벤치마킹했다. 당시 국내에 택배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택배라는 말 자체가 원래 일본어이기 때문에 한때 우리말을 사랑하자는 차원에서 ‘문 앞 배달’, ‘집 배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했지만 결국 ‘택배’라는 단어가 승리자가 됐다. 한진은 택배라는 생소한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 마케팅을 하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택배라는 개념이 점차 자리매김을 했다.

택배 군웅할거 시대

국민들 사이에서 택배 서비스 개념이 점차 정착되면서 대기업들이 앞다퉈 택배시장에 진출했다. 앞서 언급한 한진택배, CJ대한통운 이외에도 현대로지엠(1994년),CJ GLS(1999)가 연이어 택배시장에 진출했고, 2006년 3월 CJ GLS가 삼성HTH를 인수 합병함으로써 택배시장의 M&A 열풍에 불을 당겼다. 2007년 이후에는 유진이 로젠택배, 동부가 훼미리택배, 한진이 쎄덱스 등을 인수하면서 택배시장은 그야말로 군웅할거 시대가 됐다. 특히 TV홈쇼핑 시장이 형성되면서 택배시장은 더욱 급성장했고, 여기에 온라인 쇼핑몰이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택배사업은 ‘노다지’ 그 자체였다. 게다가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택배 사업은 손 대면 망하지 않는다는 법칙이 작용될 정도였다.
사진=픽사베이

택배기사의 희생이

하지만 이같은 택배사업의 성장세 뒷면에는 특수 고용직으로 불리는 택배 기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택배기사는 사업주로 취급을 받지만 평균 수준의 가계 소득을 위해 평균 이상의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구조가 되면서 엄청난 노동 강도에 비하면 받는 수수료는 그야말로 형편 없다. 심지어 일부 회사는 수익성을 지킨다면서 기사 1명 당 인건비를 낮게 책정하면서 택배기사들의 희생은 더욱 가속화됐다. 설상가상 코로나19 여파가 길어지면서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택배기사들의 노동 강도는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