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이승만 초상 화폐

2022-12-14     어기선 기자
1950년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우리나라 역사에서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화폐가 존재했다. 바로 이승만 대통령 초상 화폐이다. 당연히 이승만 정권 때 사용했던 화폐이고, 4.19 혁명으로 인해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대통령 얼굴을 도안으로 하는 화폐의 존재는 사라졌다. 전세계적으로 현직 대통령의 얼굴을 화폐에 새긴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화폐에 현직 대통령의 얼굴은 없다. 그동안 전임 대통령의 초상을 화폐로 새긴 사례는 많지만 현직 대통령의 얼굴을 화폐로 새긴 사례는 군주제 국가 혹은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했다.
1952년

한국은행 설립되자 한국전쟁 발발

1945년 광복을 하면서 중앙은행 설립이 가장 시급했다. 그 이전까지 조선은행이 중앙은행의 역할을 해왔다. 이에 1950년 5월 5일 한국은행법이 제정되면서 6월 11일 조선은행이 완전히 폐지됐고, 6월 12일 한국은행 창업식을 거행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6월 28일 한국은행 본점 청사가 북한군의 손에 떨어지면서 지하금고의 금괴 중 미리 운반하지 못한 금괴와 구 조선은행권 발행물량이 대거 약탈됐다. 더군다나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의 조폐기까지 북한군이 가져간 상황이 됐다. 이는 북한군이 마음대로 화폐를 찍어내서 시중에 유통시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나라 경제를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다급한 이승만 정권은 예금인출액을 제한하는 내용의 긴급명령 제2호 ‘금융기관예금등지불에관한특별조치령’을 발표했고,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한국은행 임시본부는 일본 도쿄지점을 통해 연합군최고사령부에 연락해서 새로운 은행권 발행을 요청했다. 그리고 7월 13일 김해항을 통해 새로운 은행권이 도착했다. 이때 천원(員)에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을 새겼다. 한복을 입은 대통령의 모습이 종이화폐에 박힌 것이다.
1952년

500원에 박힌 이승만

1952년 서울을 완전히 되찾으면서 10월 10일 조선은행권을 1천원권과 500원권으로 교환을 하게 했지만 이미 북한군이 무분별하게 뿌리고 간 조선은행권으로 인해 서울의 경제시스템은 망가졌다. 이런 이유로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500원권과 1천원권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2월 15일 긴급명령으로 화폐개혁을 시행하여 경제혼란을 수습하도록 지시했다. 즉, 원을 환으로 바꾼 것이다. 이때 환과의 교환비율은 100원 = 1환이었다. 우리나라가 점자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면서 다양한 경제 활동과 금융 그리고 물품 유통이 원활하게 되면서 1천환권과 100환권 사이의 500환권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에 1956년 3월 이승만 대통령을 도안으로 하는 500환권이 발행됐다. 이어 1957년 3월 신 100환권의 도안을 변경해서 개정 100환권을 발행했는데 개정 100환권의 앞면에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을 한복 초상에서 양복 초상으로 바꿨다. 1958년 8월 광복절을 맞이하여 독립문이 도안된 50환권을 발행하였고 동시에 500환권의 도안을 다소 변경한 신(新) 500환권을 발행하였는데 기존 500환권의 중앙에 한복을 입은 이승만 대통령 초상을 우측으로 옮기고 한복 초상 대신 양복 초상으로 변경했다. 이로써 50환권과 10환권을 제외하고 모두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을 지폐에 박게 된 것이다. 하지만 4.19 혁명으로 인해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간 화폐는 더 이상 시중에 유통될 수 없게 되면서 ‘환’에서 ‘원’으로 1962년 바꾸게 됐다. 이로써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박힌 지폐가 시중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