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반말 그리고 조선시대 상팔하팔
2024-01-09 어기선 기자
조선시대 상팔하팔
사실 성리학적 절서가 근간인 조선시대에는 서열을 따진 기록은 없다. 조선시대는 상팔하팔이라고 해서 서로 위아래 8살 차이까지는 서로 친구할 수 있는 문화가 있었다. 정도전과 정몽주는 나이 차이가 5살 차이였지만 서로 벗을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오성과 한음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우정 사례로 꼽히고 있지만 서로 나이 차이가 5살 차이다. 즉, 조선시대에는 이른바 ‘기수 문화’라는 것이 없었다. 벗이 되고 안 되고의 중요한 잣대는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 등이었다. 이런 이유로 ‘망년지교(忘年之交)’라는 사자성어도 있다. 망년지교란 나이를 잊고 우정을 나눈다는 뜻이다. 성리학적 질서에서 벗이란 군자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기수 문화가 필요 없었다.기수 문화는 일제강점기부터
학교에서 상급생이 하급생을 통제하는 문화는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이뤄진 문화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모리 아리노리는 이토 히로부미 내각 초대 문부대신인데 1886년 사범학교령을 발표했는데 핵심 내용은 군대제도를 사범학교에 도입한다는 것이다. 상급생은 신이기 때문에 상급생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이른바 기수 문화였다. 이는 일제강점기가 통제를 강화해서 통치를 수월히 하기 위한 것이다. 학교 내 반장 제도 역시 군대 내 하사관 제도가 일본 근대 교육과정에서 학교로 적용된 사례이다. 반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치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해 기수 문화를 뿌리 내리게 했고, 이로 인해 1살 차이만 되도 존댓말을 사용해야 하는 등의 문화가 뿌리내리게 됐다. 이것이 해방 이후에도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군대 문화가 계속해서 사회에 유지되면서 기수문화가 뿌리를 내리게 됐다. 하지만 이런 기수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기수문화가 사라지게 됐지만 상급생에게 존댓말을 해야 하는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