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아일랜드 그리고 타이타닉
2023-01-11 어기선 기자
강물에 초록색 염료 뿌려
해마다 3월 17일이면 성 페트릭의 날을 기린다. 이날 사람들은 녹색 모자나 옷을 입고 대낮부터 술집에 들어가 아일랜드 맥주인 기네스를 마신다. 이날은 성 페트릭이 세상을 떠난 날인데 성 페트릭은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살았다. 이날을 아일랜드 사람들이 기리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영국 태생이지만 아일랜드에 노예로 팔려갔고, 어려움 속에서 신을 만났고, 노예생활에 벗어나 가족에게 돌아갔지만 아일랜드를 잊지 않았고, 주교가 돼 아일랜드로 돌아갔고, 카톨릭을 전파했다. 성 페트릭은 카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클로버를 사용했다. 이런 이유로 클로버는 새로운 생명과 기운을 의미했다. 그리고 아일랜드에 뱀을 쫓아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성 페트릭의 날이 미국 전역에서 열리게 된 것은 1762년 3월 17일 뉴욕시에 주둔하던 영국군 소속 아일랜드 병사들이 음악을 연주하면서 행진한 것이 계기가 됐다. 타국 땅에서 영국을 위해 복무를 해야 하는 그 설움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로 이야기하면 일제강점기 때 조선 백성이 일본 군사가 돼서 중국 땅에서 '아리랑'을 부른 것이다. 영국 소속 아일랜드 병사들이 음악을 연주하면서 행진을 했던 것이 아일랜드 이주민들의 마음을 울리게 되면서 그때부터 성 페트릭의 날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게 됐다.아일랜드의 이주 역사
아일랜드 사람들이 잉글랜드의 탄압에 못 이겨 새로운 땅 즉 신대륙인 미국으로 이주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일랜드 대기근은 100만명이 굶어죽었다. 살아남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해야 했다. 그 중에 그나마 이주가 용이한 곳이 바로 미국이었다. 현재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수는 3,467만 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아일랜드 본토 인구의 7배를 넘는 수준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하지만 이미 미국은 영국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사회의 모든 기득권을 영국인이 장악하면서 아일랜드 사람들이 미국 땅을 밟았을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됐다. 이런 이유로 하류층으로 살아야 했다. 이런 이유로 '흰 검둥이'라는 조롱을 받아야 했다. 흑인은 그나마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받았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계속해서 핍박을 받아야 했다.그래도 미국으로
이런 핍박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미국으로 향해야 했다. 아일랜드 본토에서는 더이상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타이타닉호는 미국으로 향하는 구원의 뱃길이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삼등칸에 타서라도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고, 영화 타이타닉에서 삼등칸의 사람들에 대해 자세한 묘사를 했다. 하지만 빙상에 부딪혀 침몰할 때 가장 먼저 구조를 했던 사람들은 여자와 어린아이였고, 1등칸 사람들이었다. 이에 삼등칸에 있던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차가운 바닷속에서 사망을 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아일랜드 코브항에는 타이타닉 관련된 기념물도 있다. 이렇게 계속해서 미국 이민을 하면서 오늘날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 등 아일랜드 출신 대통령도 배출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