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해녀

2024-01-30     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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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경북 동해안 해녀 절반이 70세 이상 고령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30일 경북도에 따르면 나잠어업인 생활실태 파악을 위해 지난해 9월 5일부터 10월 28일까지 조사를 했는데 70세 이상 고령으로 나타났다. 나잠어업이란 산소 공급 장치 없이 잠수한 후 낫·호미·칼 등을 사용해 패류, 해조류 등 수산동식물을 포획하거나 채취하는 어법이다. 조사대상 가운데 여성이 85.0%를 차지했으며 연령대별로는 70∼79세가 43.9%, 60∼69세 37.0%, 80세 이상 9.2% 등이었다. 전체의 53.1%가 70세가 넘는 것이다. 또한 판매금액이 가장 많았던 품목에 관한 질문에 75.7%가 미역을 꼽았고, 성게(21.3%), 전복(1.5%), 해삼(0.7%) 등이 뒤를 이었다. 나잠어업 종사 기간은 40년 이상 64.1%, 30∼40년 미만 15.7%, 10년 미만 7.6% 등으로 평균 종사 기간은 40.5년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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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는 조선시대 착취 역사가 담겨

해녀는 조선시대 착취 역사와 함께 탄생했다. 원래 나잠어업은 남성이 담당했다. 이에 남자 잠수부를 포작인(鮑作人)이라고 불렀다. 원래 ‘보자기’라고 부른 것을 한자음을 빌려 포작이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포작인은 깊은 수심에서 전복, 소라, 고동 등을 채취했고, 해녀는 비교적 얕은 수심에서 해조류를 채집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토지세와 요역 이외에도 공물을 바치는 세금이 부과됐다. 당연히 바닷가에는 해산물을 공물로 바쳐야 했다. 문제는 공물 할당량을 충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는 것이다. 이에 포작인이 도주하거나 죽거나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 여기에 제주도는 포작인들이 도망치는 것을 금하기 위해 출륙금지령까지 내리고 어선 건조를 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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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에 의해 탄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포작인이 도망을 가기 시작하자 관리들이 꼼수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해녀를 포작인으로 등록시킨 것이다. 이런 이유로 포작인이 사라지게 되고 해녀가 남게 됐다. 정조시대에는 해녀가 잠수병과 이명 등의 직업병이 있고, 어렵고 위험한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전복을 끊었다고 한다. 강화도 조약 이후 서양인들이 해녀를 해외에 소개를 했는데 ‘나체로 자유롭게 바다를 가르는 여인들’이라고 묘사를 하면서 서구에서는 마치 인어공주와 같은 환상을 심어줬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에서 해녀들이 작업한 해산물을 싹쓸이하면서 그에 따라 저항을 하면서 독립운동도 일어났다.

제주해녀항일운동

1931년부터 1932년까지 연 인원 1만 713명의 해녀가 238회 걸쳐 궐기를 한 해녀항일투쟁이 대표적이다. 여성 주도 항일운동이면서 전국 최대 어민 운동이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에 의해 해산물 수탈이 심해지자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을 1920년에 세웠다. 하지만 일제는 조합장을 제주도사가 겸임하게 하면서 어용조합으로 변질시켰고, 횡포가 날로 심해졌다. 이런 가운데 1930년 성산포에서 해녀조합의 일본인 관리들이 우뭇가사리 시세를 무시하고 반값으로 매입하는 횡포가 발생하면서 결국 항일투쟁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관제조합 반대, 수확물에 대한 가격 재평가 등의 요구 조건으로 내세웠다. 면사무소 지부장은 해녀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서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일제는 핵심 주동자를 체포하는 등 탄압에 탄압을 거듭해서 해녀들의 항일투쟁 의지를 꺾이게 만들었다. 이에 검속된 해녀들만 100여명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