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평화의 댐

2023-02-03     어기선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평화의 댐은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민간인 출입통제선 경계에 위치한 댐이다. 길이 601m, 높이 125m, 최대저수량 26억 3,000만t으로 우리나라에서 3위 규모이다. 1989년 준공됐고, 2004년, 2012년 걸쳐 증축됐다. 당초 금강산댐 수공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댐이었는데 훗날 금강산댐 수공은 거짓이라고 판명나면서 전두환 정권 당시 희대의 사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때 증축한 이유는 평화의 댐이 갖고 있는 역할 때문이다.

직선제 개헌에 직면한 전두환

1986년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에 직면하게 됐다. 이에 내놓은 것이 바로 ‘금강산댐’이었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만드는 이유는 수공(水攻)으로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알렸다. 무려 200억 톤의 물을 금강산댐에 가둬놓았다가 터뜨려서 63빌딩도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하루종일 63빌딩 절반이 물에 잠기는 모습 등을 모형을 통해 보여줬고, 유명 대학교수들이 출연해서 설명을 했다. 이에 국민들은 극도로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면서 금강산댐의 수공에 대비할 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평화의 댐 건설 움직임이 보였다. 문제는 예산이었는데 결국 전두환 정권은 기업과 국민들에게 반강제 성금으로 모금했다. 이에 TV에서는 하루종일 모금 과정을 생중계했다. 그러자 온나라가 반공 분위기에 휩싸였고 자연스럽게 야당이 요구한 직선제 개헌 목소리는 가라앉게 됐다. 다만 그 이듬해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직선제를 쟁취했다. 당시 시나리오를 계획한 사람은 장세동 안전기획부 부장과 이학봉 제2차장이었다.

희대의 사기

사실 금강산댐의 수공은 희대의 사기였다. 우리나라 최대 댐인 소양강 댐의 최대 저수량이 29억톤이다. 그런데 금강산댐이 200억톤이라는 것은 북한강 상류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현 불가능에 가깝다. 200억톤의 물을 가두기 위해서는 엄청난 크기의 호수가 만들어 져야 하는데 북한강 상류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현실 불가능이다. 왜냐하면 북한강 상류이기 때문에 거의 산 정상에 가깝다. 따라서 200억톤의 물이 가둬지는 것이 아니라 역류를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에게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토목기술 수준으로는 200억톤 짜리 금강산댐을 만든다는 것을 불가능이다. 결국 사람들이 삽을 갖고 파는 수준이 돼야 하는데 200억톤을 가두는 댐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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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진실

결국 총 공사비 1700억원으로 공사가 시작됐고, 이중 639억원은 국민성금을 통해 충당됐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국정감사에서 진실이 드러났다. 금강산댐의 최대 저수량이 59.4억톤이 불과하다는 것이다. 해당 수준으로는 수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후 2003녀 항공사진을 판독한 결과 절반 수준인 26억 2천만톤으로 판명됐지만 전두환 정권 실세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결국 평화의 댐 건설은 사기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과 2012년 두 번에 걸쳐 증축을 했다. 그 이유는 금강산댐의 노후화에 따른 문제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금강산댐의 수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공이 불가능할 뿐이지 수도권 저지대의 침수는 가능하다. 즉, 금강산댐이 노후돼서 사고 등으로 무너지게 된다면 한꺼번에 물이 하류로 몰리게 되면서 수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평화의 댐은 이를 막는 1차 방어선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금강산댐 수공을 막아내는 역할은 하지 못하지만 일단 하류 지역 침수를 1차적으로 막아내는 역할은 한다. 실제로 금강산댐이 2002년, 2005년 예고 없이 수억톤을 방류했을 때 방어하는 효과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