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뷰] 다가오는 주총 시즌...국민 집사 ‘국민연금’에 쏠리는 눈
2023-02-06 전수용 기자
문제의 윤석열 대통령 발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소유가 분산되어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스튜어드십(stewardship)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은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고,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유 분산 기업은 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경영 금지) 규제를 받는 금융사들이나 포스코·KT처럼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기업처럼 주식이 소액주주들에게 분산돼 확실한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이다. 스튜어드십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기관투자자가 투자한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행동 지침이다. 4대 금융지주나 포스코, KT, KT&G 등 소유 분산 기업의 최대 주주 혹은 2대 주주인 국민연금 기금을 지렛대로 삼아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 등에서 투명성을 높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영향력 커지는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과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력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2018년 109조원이었던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지난해 3분기 기준 139조원으로 증가했다. 기업 수도 2021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율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264곳에 이른다. 특히 소유분산 기업, 일명 주인 없는 기업에서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역할을 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이거나 주요주주인 소유분산기업은 ▲KT (10.74%, 국민연금 보유 지분율) ▲POSCO홀딩스 (8.5%) ▲KT&G (7.44%) ▲KB금융 (7.97%) ▲신한지주 (8.22%) ▲하나금융지주 (8.4%) ▲우리금융지주 (7.86%) 등이다.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후 이를 강화해왔다. 스튜어드십 코드 이전에는 배당 관련 사항에만 주주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과도한 임원 보수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행사 방법도 비공개 대화, 중점 관리기업 선정과 공개, 공개서한 발송, 주주제안 등으로 다양화했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2018년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경영진의 총 안건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표시를 한 안건 비율)은 16.61%로 전년 11.47% 대비 증가했다. 2019년에도 반대 비율은 17.24%를 기록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반대 비율은 각각 10.33%, 9.19%로 하락했다. 다만 이는 상장사들이 국민연금을 의식하고 미리 문제의 소지가 있는 안건을 최소화한 결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CEO 연임 문제에 공세
최근 들어 국민연금은 소유분산기업의 CEO(최고경영자) 연임 문제에 날을 세우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이사의 연임을 결정하자 국민연금은 이례적으로 즉각 입장문을 내고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국민연금은 KT 이사회의 결정이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서원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KT, 포스코홀딩스, 금융지주 등 소유분산기업들이 CEO 선임을 할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따라야 불공정 경쟁, 셀프 연임, 황제 연임 같은 우려들이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국민연금과 KT는 다음달 열릴 예정인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3월 주총에서 현 구현모 CEO의 연임이 확정된다고 해도 경영 불안 양상이 지속될 것”이라며 “정부가 직접 나서서 정부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화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기업 경영활동 저해 우려도
업계에서는 KT뿐만 아니라 포스코홀딩스 등 기업들의 CEO 선임과 연임 문제가 쉽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늘리자는 것이 최근 자본시장의 추세이긴 하지만 한편에서는 너무 과할 경우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정부 등 정치권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때문에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를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 철저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넘치면 모자라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 없는 기업’의 CEO들이 장기 집권하는 관행을 허물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가 이용된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CEO 교체가 정부 입맛대로 된다면 지배구조 개선이 아니라 ‘관치’에 불과한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는 국민연금 외에도 해외 금융사, 개인 소액주주 등 다양한 주주가 있고, 엄격히 말하면 이들이 모두 기업의 주인”이라며 “불필요한 경영 개입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되면 금융사의 진짜 주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