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삼청교육대

2024-02-09     어기선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해 6월 삼청교육대 피해자 41명에 대한 1차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데 이어, 2차로 피해자 111명의 피해 사례를 추가로 밝혀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당시 삼청교육대에 청소년 600여 명이 강제로 입소됐던 실체를 확인했다. 또한 입소한 학생들에게 교관들은 같은 학교 학생의 뺨을 때리도록 요구하는 등 인권침해를 자행한 것으로 확인했다. 또 삼청교육대를 퇴소한 뒤에도 '순화교육 이수자'라는 이름으로 1989년까지 국가의 감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국회와 국방부에 ‘삼청교육피해자법’을 개정해 삼청교육과 관련된 모든 인권침해를 피해 범주로 포함하고 장기적인 조사기구 설치, 재심 조치 등을 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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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때 만든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신군부가 실권을 장악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삼청계획 5호에 따라 만든 반인륜적 불법 기구이다. 치안 보호라는 명분으로 설립됐지만 범죄자 이외에 무고한 시민까지 불법적으로 수용하면서 무지막지한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12.12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으로 손에 피를 묻혀가며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이 자신의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의 저항의지를 꺾는 방법으로 만든 기구가 삼청교육대이다. 명복은 범죄자 등을 훈련을 통해 교화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초법적인 기구였다. 그리고 삼청교육대를 나왔다고 해서 강력범죄가 줄어들지 않았다. 조두순의 경우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지만 교화는커녕 1995년 살인을 저지르고, 2008년 아동 특수상해 강간을 일으키는 등 더 악독해졌다. 따라서 교화된 사례가 거의 없다.

징집 대상자 살펴보면

명목상 범죄자 등을 징집 대상자로 삼았지만 ‘개전의 정 없이 주민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자’라는 애매모호한 규정을 만들어났다. 여기에 경찰 등 수사기관 공무원들은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이에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다가 걸리거나 음주가무 소란자, 신분증 없는 신원 불명자 등도 징집 대상자가 됐다. 이밖에도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삼청교육대의 설립 목적 중 하나가 결국 자신의 체제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수용시켜서 교화를 시킨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전두환 정권에 반대되는 세력의 인물들을 삼청교육대에 끌고 가기도 했다.

가혹행위는 참혹 그 자체

당시 삼청교육대에서 실시한 가혹행위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이 훗날 증언하기를 온갖 특수 훈련을 다 받아 본 자신도 견뎌내기 힘들 정도였다고 했다. 즉, 각종 특수 훈련을 경험했던 군인도 삼청교육대의 교육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게다가 각종 고문과 구타 등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삼청교육대에서 사망을 한 사례도 발생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임근실이다. 당시 31세이지만 매우 허약한 사람이었다. 당시 떨어진 밥알을 주워 먹었다는 이유로 조교들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해서 결국 사망했다. 이후 은폐됐지만 1988년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나면서 삼청교육대의 잔인성과 야만성 그리고 폭력성을 세상에 알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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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순기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삼청교육대는 그 가혹성 때문에 결국 폐지됐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마음데 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삼청교육대에 보내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교화의 효과는 전혀 없다는 것이 판명됐다. 삼청교육대 이후 전두환 정권인 5공 시절 치안이 좋아졌다면 삼청교육대의 교화 효과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겠지만 전두환 정권 때에 각종 강력 범죄가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특히 조직폭력배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가 바로 5공이었다는 점에서 삼청교육대와 강력범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실제로 법무연수원에서 발간한 범죄백서에 따르면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4대 흉악 강력범죄 발생건수는 1979년에는 5755건. 전두환의 마지막 임기년도인 1987년에는 9342건으로 늘어났다. 조직폭력배의 전국구화를 초래했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 그 이전까지 조직폭력배는 각 지역을 거점으로해서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조폭이 일시에 삼청교육대에 입소를 하게 되면서 이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거나 등등을 하면서 점차 전국구화를 꿈꾸게 됐다. 이런 전국구화는 그로 인해 강력범죄의 증가로 이어지게 됐다. 게다가 조폭이 ‘정권’과 맞물리면서 조폭의 힘이 오히려 박정희 때보다 더 강하게 됐다. 이로 인해 노태우 정권 때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할 정도로 조폭은 막강한 힘을 갖게 됐다.

언론도 일조

사실 삼청교육대가 현재에도 순기능이 있는 것처럼 비쳐진 것은 언론의 역할도 컸다. 당시 언론들은 삼청교육대를 나와서 새 사람이 됐다는 식의 홍보 기사를 쏟아냈다. 그야말로 미화 기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내면서 삼청교육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방송 역시 입소자 인터뷰를 통해 삼청교육대가 새사람으로 만드는 교화 기관으로 둔갑시켜버렸다. 사실 모진 고문과 구타에 의해 강요된 대사를 외운 것에 불과하지만 매일 삼청교육대에서 교화된 입소자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삼청교육대가 마치 순기능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게 됐고, 이것이 오늘날에도 “삼청교육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식으로 둔갑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