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언론통폐합
2023-02-09 어기선 기자
언론사 사주들 불러다가
1980년 11월 12일 오후 6시 각 언론사 사주들을 국군보안사령부가 불렀다. 당시 명분은 면담이나 강연이었다. 하지만 언론사 사주는 치욕과 수난을 겪어야 했다. 서울지역 13개 언론사 발행인과 경영주 17명은 보안사령부에서 맡았고, 지방 언론사는 그 지역 보안부대가 각서를 받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지 사주들은 각서를 쓰기를 거부하면서 인격모독과 가혹행위를 가했으며 각서를 강제적으로 받아냈다. 45개 언론사 사주로부터 52장의 각서를 받았다. 그것은 조건 없이 언론사를 포기하고, 향후 이 일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틀 뒤인 11월 14일 신군부는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에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보냈고, 언론통페합을 단행했다. 주요 내용은 방송의 공영화, 신문과 방송의 겸영금지, 신문 통폐합, 중앙지의 지방 주재기자 철수, 지방지의 1도 1사제, 통신사 통폐합으로 대형 단일 통신사(연합통신) 설립 등이었다.K공작계획 일환으로
언론통폐합은 K공작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12.12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으로서는 언론을 통제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을 칭송하던 언론 환경을 전두환 정권 찬양 환경으로 바꿔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언론의 거대기업화를 심화시켰다. 특히 기업들이 언론을 소유하면서 기업과 정권의 연결고리에 언론이 있어, 그 역할을 하면서 박정희 정권과 언론 그리고 기업들이 서로 공생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 때 이른바 재벌이 된 기업들은 하나같이 언론을 소유하고 싶어 했고, 실제로 소유한 기업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것은 언론을 방패막이 삼아 박정희 정권에 충성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지역에서는 지역 유지와 언론사를 소유함으로써 정권으로부터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정권을 찬양함으로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나갔다. 그런데 10.26 사건으로 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음을 맞이하자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그때 언론이 다음 정권 길들이기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이유로 12.12 사태, 5.17 쿠데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전두환 신군부에 대해 협조를 하면서도 크게 전두환 신군부에 동조하지도 않으면서 관망세를 보였다. 전두환 신군부로서는 언론을 확실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정권을 잡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K공작계획 일환으로 언론통폐합을 실시한 것이다. 이는 기업으로부터 언론사를 분리해서 공영언론사로 만드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지방지는 1개로 만들어서 지역 유지들이 언론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통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언론의 독과점을 심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른바 땡전 뉴스를 탄생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언론이 정권에 순응하는 그런 환경을 만들면서 오늘날 ‘기레기’라는 말이 나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