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2월 10일 숭례문 방화 사건 발생

2024-02-10     어기선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2008년 2월 10일은 숭례문 방화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70대 남성 채종기가 국보 1호인 숭례문에 방화를 저질러 소실이 됐다. 2013년 복구됐지만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가 방화로 소실이 되는 장면을 온 국민이 지켜봐야 했기 때문에 상당히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점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개혁을 해야 하는지가 드러났다.

원인모를 불이

이날 오후 8시 50분 숭례문 2층에서 원인 모를 불이 흰 연기와 함께 발생했다. 이에 소방당국은 소방차 32대, 소방관 128명을 현장에 출동시켰다. 소방관들은 총력을 다했지만 2층 누각 전체가 불에 휩싸였고, 화재 4시간 만에 지붕이 붕괴되면서 2층이 붕괴됐다. 이윽고 숭례문의 고주와 평주, 주심도리를 비롯한 기본 뼈대들과 누각을 받치고 있는 석반을 남긴 채 모두 붕괴됐다. 당시 방화에 쓰인 것은 시너 3통과 라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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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지개발에 불만

채종기는 택지개발에 따른 자신의 토지에 대한 보상액에 불만을 가졌다. 해당 건설사가 땅과 건물 값의 감정 평가를 토대로 9680만 원을 제시했지만 채종기는 5억을 요구했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2006년 창경궁에 불을 질러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종묘에 불을 지르려고 했지만 경비가 삼엄하자 숭례문으로 바꿨다. 문화재를 타켓으로 삼은 것은 경비가 허술하며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장 검증 자리에서 채종기는 “노무현의 잘못은 99.9%, 내 잘못은 0.1%”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면서 인명 피해는 없었고,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고 해서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비록 2층 누각 붕괴됐지만

2층 누각은 붕괴되면서 사라졌지만 1층 누각은 구조는 유지됐었고, 숭례문 안에 있던 문화재는 1960년대 해체 보수할 때 꺼내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겼다. 가장 중요한 숭례문 현판은 연결부분을 톱으로 절단, 바닥에 떨어뜨렸기 때문에 약간 파손이 있었지만 양녕대군의 글씨를 유지할 수 있었다. 복구가 결정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재에 쓰일 소나무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이에 태조 이성계의 5대조가 안장된 준경묘(濬慶墓) 경역의 금강송 20그루를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에 사용하는데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동의해 이를 벌채했다. 그리고 곳곳에서 소나무를 기증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대목장 신응수가 국민기증목(木)을 빼돌린 혐의가 발각되면서 법적 처벌은 물론 대목장 지위를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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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책임? 이명박 책임?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막바지면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취임 15일 전에 일어났다. 이에 정부의 관리 소홀 문제가 불거지면서 누구의 책임이냐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왜냐하면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시장에서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당은 서울시와 중구청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에 숭례문 방화를 두고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