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일본의 튀르키예 종이학 보내기

2024-02-14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튀르키예 대지진으로 피해가 발생하자 일본은 종이학 보내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그에 따른 반발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 뉴스 프로그램 아베마 프라임은 최근 튀르키예 지원 방안에 대해 상황에 따라 물품을 보내야 할 때가 있다면서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1000마리의 종이학은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빵과 물도 없는 지금 이 시기에 1000마리 종이학은 처치 곤란이다”고 경고했다. 일본은 지진 등의 피해 지역에 종이학을 접어 보내는 일이 많았다. 우크리이나 전쟁 발발 당시에도 일본인들은 대사관에 종이학을 전달했다.

원폭 이후 생긴 종이학 미신

일본의 종이학 접기는 센바즈루(千羽鶴せんばづる)라고 부른다. 장수를 기원하는 상징물로 여겼다. 또한 반전 반핵운동과 평화를 기원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는 사사키 사다코(佐々木禎子, 1943~1955)라는 소녀의 사연에서 비롯됐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사사키 사다코는 2살이 되던 해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인해 방사능 피폭이 됐다. 1955년 2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히로시마 적십자 병원에 입원했는데 사연을 들은 고등학생들이 종이학을 선물 받고 사다코는 종이학 접기를 시작했고, 다른 입원자들까지 동참하면서 천마리를 넘겼다. 하지만 그해 10월 25일 12살의 나이로 사다코는 사망했다. 이 일화가 알려지면서 천마리 학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서 종이학은

우리나라에서 종이학은 여럿 접어 유리병에 넣으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1천번 접는 것은 센바즈루(千羽鶴せんばづる)에서 기원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연인을 위해 종이학 천번을 접어 선물을 하기도 했다. 천번을 접은 종이학은 자신이 연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종이학을 접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라면서 점차 사라졌고, 이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지금도 만약 종이학을 접어 선물을 하려고 한다면 구시대 낡은 유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