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뷰] 증권업계, 고객 예탁금으로 가만히 앉아 2조원 챙겼다

2024-02-21     전수용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전수용 기자] 지난달 31일 국내 일부 증권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도 성과급 잔치를 벌이려다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렸다. 이런 가운데 고객들이 맡긴 예탁금으로 최근 4년간 2조원에 육박하는 불로소득을 벌어들인 것으로 드러나 ‘자기 배 불리기’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개 증권사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고객 예탁금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총 2조4670억원에 달했고, 같은 기간 고객에게 지급한 이자는 5965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객 예탁금 운용 방식

증권사에 맡겨 놓은 고객 예탁금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74조 1항과 2항에 따라 한국증권금융에 전액 신탁 또는 예치해야 한다. 한국증권금융은 이 예탁금을 같은 조 12항에 따라 ▲국채증권 또는 지방채증권 ▲금융기관이 지급을 보증한 채무증권 등 안정적 운용을 해할 우려가 없는 곳에 투자한 후 그 수익금을 증권사에 배분하는 방식이다. 증권사는 예탁금 운용에 따른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고객이 맡겨 놓은 예탁금을 한국증권금융에 신탁 또는 예탁하는 것만으로 안정적 수익을 거두는 구조다.

연도별 고객 예탁금 규모

증권사 수익은 고객 예탁금 규모가 크고 금리가 높을수록 유리한 구조인데, 최근 금리상승에 이어 증권사 예탁금 규모 또한 크게 늘어나 증권사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증권사 고객 예탁금 규모는 2019년 26조6500억원에서 2020년 48조1556억원으로 크게 늘었고, 이어 2021년에는 68조1898억으로 2019년에 비해 2.5배 이상 증가했다. 2022년에는 59조7299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약간 줄어들긴 했지만 4년간 총 202조7253억원에 달하는 큰 규모다. 고객 예탁금 중 미리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5대 증권사의 4년간 예탁금 평균잔고(평잔)은 총 112조1865억원으로 전체의 55.3%를 차지하고 있다.

예탁금 운용을 통한 수익 현황

증권사들이 한국증권금융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률은 기준금리+알파 수준으로 결정되는데 4년 동안 최고 수익률은 1.94%, 최저 수익률은 0.80%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액으로는 2019년 4513억원에서 2020년에는 4410억원으로 조금 줄었고, 2021년에는 예탁금 규모가 급증했지만 기준금리가 낮아 5012억원에 머물렀다. 하지만 금리 상승기에 접어든 2022년에는 1조735억원의 이익을 거두는 등 4년 동안 총 2조4670억원을 벌어들였다. 전체 이익 중 5대 증권사가 벌어들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은 1조4758억원으로 59.8%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이며, 벌어들인 이익금은 증권사 예탁금 규모에 따라 매년 동일한 이율을 적용해 고스란히 증권사에 분배되고 있다.

증권사가 고객에게 지급하는 이용료율

증권사들이 예탁금을 맡긴 고객에게 지급하는 이자는 개인별 예탁금 금액과 당해연도 금리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예탁금 금액이 ▲50만원 미만일 경우 평균 0.1%~0.2% 수준이고 ▲50~100만원 미만은 평균 0.2%~0.3% ▲100만원 이상일 때는 평균 0.2%~0.4%로 평균 0.2% 수준에 머물렀다. 증권사들이 챙긴 수익률이 최저 0.8%에서 최고 1.94%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고객에게 수익금을 되돌려 주는 비율은 약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증권사들이 4년동안 고객에게 지급한 금액은 2019년 1739억원, 2020년에는 1235억원으로 줄었고 2021년 1020억원으로 더 줄었지만, 2022년도에는 지급이율이 조금 높아진 2022년도에는 1970억원을 지급해 4년 동안 총 5965억원을 지급했다. 이 가운데 5대 증권사가 지급한 금액은 3379억원으로 전체 지급액중 56.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정숙

증권사, 고객에게 적정 이익 분배해야

이처럼 증권사들이 고객이 맡겨 논 예탁금으로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4년만에 2조원 가까운 이익을 벌어들였고, 수십년간 이어졌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동안 누적 수익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은 “증권사들은 IMF 사태를 계기로 1998년부터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하고도 2018년까지 고객에게 단한푼 되돌려 주지 않았고, 불로소득으로 자기배 불리기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양 의원은 이어 “이익금액을 예탁금 주인인 고객에게 적정하게 돌려주도록 이익배분에 관한 가이드라인 또는 증권사별 공시제도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금융감독원 제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이 거둔 2017년~2021년까지 5개년도 영업이익은 38조3868억원에 달하고, 2022년에도 3분기 누적 5조6385억원의 이익을 더해 총 44조254억원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레고랜드사태로 인해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자 정부는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채안펀드 50조+@ 대책을 마련하는 등 지원 정책을 펼쳐왔지만, 일부 증권사들은 이런 와중에 “성과급과 배당금 잔치” 움직임을 보여 금융감독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양정숙 의원은 “최근 금융감독원이 국내 증권사를 대상으로 성과급을 3년간 나눠 지급하는 ‘증권사 성과급 이연제도’와 손실발생시 성과급을 환수하는 ‘클로백 제도’ 채택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힌 만큼, 그 진행과정과 결과를 면밀히 살펴 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