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불교정화운동
2023-02-24 어기선 기자
이승만의 말 한 마디에
1954년 5월 20일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대처승은 일본제국의 잔재이므로 모두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불교는 해방 이후 교단개혁, 불교혁신, 불교개혁 등의 이름으로 자정운동이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 불교개혁의 움직임이 더욱 촉발된 것이다. 이에 불교혁신총연맹이 조직됐는데 대처승을 교단 중심부에서 배제하고, 사찰의 토지를 개혁해서 소작인에게 분배하고자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말 한 마디가 시발점이 되면서 대처승과 비구승(결혼하지 않은 스님)과의 갈등이 표출됐다. 1955년 8월 3일 서울 조계사에서 ‘전국승니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불교정화운동에 대한 열망이 표출됐었다. 그리고 이날 비구승에게 주도권이 넘어오면서 정부도 이를 공인하게 됐고, 1962년 4월 통합종단이 성립됐다. 1962년 4월 비구, 대처 양측이 마침내 불교재건위원회에 합의하면서 재건비상종회를 구성하고 종헌을 제정 공포했다. 이에 따라 양측의 종단으로부터 종권을 인계받은 통합종단이 성립됐다.정치자금 모금 위해?
다만 일각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불교 개혁을 요구하고 나선 것에 대해 단순히 불교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거 아니라 불교가 당시 갖고 있었던 막대한 자금을 정치자금으로 흡수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만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불교는 막대한 재산을 쌓아갔었다. 그리고 불교정화운동을 통해 불교가 상당히 개혁을 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불교의 형태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