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아시아 네 마리 용

2024-03-07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아시아 네 마리 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일본의 뒤를 이어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룬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 즉 대한민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이르는 말이다. 원래 일본에서 나온 말로 서양에서는 네 마리 호랑이로 표현했지만 아시아권에서는 ‘호랑이’ 대신 ‘용’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가 다른 3개 지역과는 비교가 안되게 국력이 커졌으며 중국이 G2로 급부상하면서 사장된 용어이다.

일본에서 유래된 용어

1970년대 말 일본은 이미 아시아의 ‘대룡’이라고 생각했고, 이에 아이사 4소룡(アジア四小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아시아의 선도국으로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일본을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는 것에 대한 놀라움으로 해당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우리나라 언론에서 받아쓰기 시작하면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1970년대 말 갑작스럽게 경제적 성장을 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모습에 상당히 놀라면서 위협을 느끼게 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피해 이후

우리나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당한 피해를 입은 국가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6.25 전쟁까지 치르면서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빈손에서 출발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약소국을 후원함으로써 냉전시대에서 소련과의 체제 경쟁을 벌였다. 문제는 약소국을 후원하는 것이 약소국의 종속으로 이어진다는 ‘종속이론’이 있었는데 아시아 네 마리 용은 이것을 깨부순 사례가 된다. 남미권에서도 미국의 후원을 받은 약소국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성장을 하지 못하고 좌절한 사례가 나오면서 ‘종속이론’이 상당히 크게 유행을 했다. 그런 종속이론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반미’ 정서를 부추겼다. 아시아 네 마리 용은 처음 출발은 저개발 후진국으로 출발했지만 선진국으로 진입한 케이스이다. 남미가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음에도 중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종속이론이 먹혀들어가지 않는 사례가 되는 셈이다.
사진=픽사베이

네 마리 용 가능했던 이유

네 마리 용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시아권의 특유의 근면·성실이 작용했다. 이들 지역은 쌀농사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농업국가 때부터 근면·성실을 미덕으로 삼았다. 아울러 높은 교육열을 기반으로 한 국가주도적 고급인재 양성,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한 통제, 높은 수준의 저축률, 낮은 세금과 최소한의 복지정책, 관치금융으로 통제된 저리의 기업 대출 등을 원인으로 찾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가 다른 용들과 달리 선진국으로 진입했던 것은 일단 다른 나라에 비하면 중국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등은 화교권이기 때문에 결국 중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는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를 이룬 나라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산업구조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만 등에서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용어를 사용한다. 다만 대만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서 ‘한때 아시아 네 마리 용’이었지만 대만과 우리나라가 확연히 차이를 보이고 있다면서 자국의 반성을 위한 용도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