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3월 15일 황성 YMCA 야구단, 덕어학교와 시합

2024-03-15     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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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06년 3월 15일은 황성 YMCA 야구단이 덕어학교와 시합을 가진 날이다. 이날은 우리나라 최초 야구 시합 기록의 날이기도 하다. 야구는 1904년 횡성 YMCA 초대 총무 질레트 선교사가 회원들에게 경기 방식을 가르친 것이 시초이다. 질레트는 ‘한국야구의 아버지’라고 불린 인물이지만 농구, 스케이트, 복싱 등 다양한 스포츠를 보급시켰다. 황성 YMCA로 불린 이유는 대한제국 황실에서 하사한 지원금과 뜻있는 내외국인들이 성금으로 1903년 10월 28일 지금의 서울 종로에 설립한 기독교단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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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가르친 질레트

질레트는 회원들에게 틈틈이 야구 기초를 가르쳤다. 그리고 조선인들은 호기심에 몰리기 시작했고, 이에 질레트는 황성 YMCA 야구단을 창단했다. 야구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했다. 또한 고종황제는 교육입국조서를 공포하면서 야구경기를 열게 했다. 그러면서 야구가 크게 유행을 하게 됐다. 그러자 조선인들끼리도 야구 경기를 펼치게 됐는데 그것이 1906년 3월 15일 훈련원(조선시대 무과 시험장이면서 군사훈련장)에서 황성 YMCA 야구단-덕어학교(독일어 학교)의 경기가 최초였다. 덕어학교가 3점차로 승리를 했다. 물론 지금과 같은 그런 경기는 아니었고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동네 야구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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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항일정신의 수단으로

1908년 8월 19일은 고종황제 초청으로 선수들이 어전에서 시범경기를 갖기도 했다. 또한 1909년 7월 21일 일본 유학생들이 야구단을 조직했고, 황성 YMCA 야구단으로 경기를 펼쳤다. 그러면서 황성 YMCA 야구단은 점차 원정경기를 다니면서 야구붐을 일으키게 된다.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강팀이 되면서 국내 야구를 평정하면서 결국 일본 원정길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는 이미 일제강점기가 됐기 때문에 조선백성의 나라 잃은 울분을 야구를 통해 해소하려고 했다. 하지만 1913년 이후 황성 YMCA 야구단은 더 이상 그라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105인 사건을 빌미로 질레트 선교사를 국외로 추방하면서그해 10월 팀이 해체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