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인왕산

2023-04-03     어기선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서울시는 3일 오전 6시 50분 기준 인왕산 산불 진화율이 98%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6시30분 헬기 4대 및 소방·구청·경찰·군·산림청 등 1337명 동원해 뒷불정리 등 완전 진화를 목표로 총력 대응하고 있다. 이번 화재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축구장 21개 면적에 해당하는 임야 15ha(헥타르)가 불에 탄 것으로 추산된다.

인왕사가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인왕산은 인왕사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다. 인왕사는 조선 개국과 함께 1393년 무학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조계종, 태고종 등 5개 종단의 작은 암자 14개가 모여서 인왕사가 됐다. 한때 인왕사는 소송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는데 지난 2019년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은 인왕사가 4명을 상대로 낸 보관금 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었다. 인왕사 총무스님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사찰 돈을 관리하다가 3천만원을 개인 채무를 갚는데 사용하고, 사찰 재건축정비 사업 관련 보상금 1억 3천500만원을 반환하지 않은 채 숨졌다. 이에 인왕사 측이 유족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냈지만 유족 측은 서로 다른 종단의 개인 암자들이 모인 연합체에 불과하다면서 인왕사를 재판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1심과 2심은 유족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에서 결국 인왕사 손을 들어줬는데 그 이유는 인왕사가 1376년 무학대사가 만든 절이고 태종의 인왕사 행차 기록이 됐고, 1988년 작성된 ‘전통사찰 선정을 위한 조사보고서’에도 사찰 주요 건물이 등재되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치마바위 전설도

인왕산에는 치마바위 전설도 남아있다. 중종의 왕비였던 폐비 신씨는 매일 중종이 있는 경회루를 향해 매일 시비를 시켜 놓아뒀다고 한다. 이에 치마바위라는 명칭이 유래하게 됐다. 선 바위는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경복궁 위치를 두고 갈등을 보였다는 전설이 남아있고,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자 선 바위에서 서대문형무소를 독립운동가들 가족들이 바라봤다고 한다. 겸재의 인왕제색도의 소재가 바로 인왕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