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중일전쟁
2023-04-05 어기선 기자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으로 참전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에게는 독이 됐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메이지 유신 이래 값싼 노동력, 아시아 시장에서 갖는 우위 등을 통해 조선과 중국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과 영향력을 높혀 갔었다. 하지만 전세계를 대상으로 특히 유럽을 상대로 수출을 하기에는 기술력 등이 형편없었다. 기업들은 유럽으로의 수출을 계속 고민했지만 유럽 시장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910년~1914년 일본 수출액은 연평균 5억 9천300만엔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 시기인 1915~1919년은 15억 9천990만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아무래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으로 일본이 참전을 하면서 일본 기업으로서는 공산품을 생산하면 날개 돋힌 듯이 유럽으로 팔려 나갔다.연합국에 참전하게 된 이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국으로 참전하게 된 이유는 안정적인 시장과 자원 확보가 중요했다. 그것은 중국땅을 잠식해 들어가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그러면서 눈독을 들였던 것은 독일이 갖고 있던 중국 내 조차지와 남태평양 군도였다. 이에 일본은 연합국으로 참전을 하게 됐고, 연합국의 일원으로 중국 내 혹은 남태평양 내 독일 땅을 잠식해 들어갔다. 당시 독일은 유럽 전선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중국과 남태평양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중국의 땅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갔다.제1차 세계대전 종전 맞이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전세계는 전쟁에 대한 각성을 하면서 국제 연맹을 출범하게 된다. 그동안 열강들의 분쟁이 암묵적으로 허용됐지만 국제 연맹 출범으로 인해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제국주의의 마지막 막차를 탔던 일본으로서는 상당히 고민스런 대목이다. 서구 열강은 신흥 제국주의인 일본을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중국 내 입지를 넓히려고 했지만 서구 열강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일본이 더 이상 커나가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호황을 누렸던 일본 경제는 공황을 맞이하게 됐다. 이미 서구 열강은 산업혁명의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력은 일본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여기에 중국인들이 반일 정서 바람이 불면서 일본 상품 보이콧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수출은 격감하고 산업 체계의 모순이 드러아면서 실업자가 발생하게 됐고, 이는 1920년대 사회주의 바람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은 일본에게는 직격타를 날리게 됐다. 그러면서 사회적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이는 경제적 혼란으로도 이어졌다.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혼란은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지게 됐다.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일본 사회는 안게 됐다. 기성 정당들은 정책에 대해 실패를 하면서 국가주의자들이 일본 국체를 바로 세워야 한다면서 덴노 중심의 정치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정치적 염증을 느꼈던 일본 국민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결국 군부가 내각을 장악하게 됐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중일전쟁까지 일으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