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속 경제리뷰] 가족의 경영권 세습을 하지 않다…도겸과 유한양행

2024-04-13     전완수 기자
삽화=김진호

※ 본 글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기반으로 쓰여졌으며 간혹 정사를 비롯한 그 외 자료의 내용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파이낸셜리뷰=전완수 기자] 최근 유한양행은 혈당 케어 프로바이오틱스 ‘당큐락’을 식약처(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그 기능성을 검증받았다. 이미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다양한 불규칙한 생활 습관으로 인해 생긴 국내 당뇨병 환자의 수가 300만은 가볍게 넘어간 상황이다. 당큐락은 이런 상황 속에서 도움이 되는 혈당 케어 효과를 가졌다. 이 외에도 유한양행은 그동안 안티푸라민, 유한락스, 지르텍 등 정말 다양하고도 뛰어난 효과의 제품들을 내놓았다. 거기에 유한양행은 그런 제품들처럼 깨끗한 기업의 표본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가족의 경영권 세습을 하지 않는 부분, 꽤나 많은 도덕적인 사례 등이 그 명칭을 뒷받침해준다. 그리고 이런 유한양행과 비슷한 형태의 세력이 삼국지에도 존재했는데, 바로 유비에게 서주를 물려준 것으로 유명한 도겸이다.

도겸

도겸은 후한 말 일명 18로 제후의 한 사람으로, 서주의 자사직을 맡고 있었다. 양주 단양현 사람이었던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바보짓을 하며 지냈기에 마을에선 평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감공이란 인물이 도겸의 용모를 보곤 범상치 않은 인물이 될 것이라 여겨 자신의 딸을 내어줬다. 이후 도겸은 마치 이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젊어서 유생으로 출사해 효럼으로 천거된 후 상서랑, 서현 현령 등 각지 지방의 장관직을 맡으며 유주 자사까지 역임하게 된다. 한마디로 출세한 것이다.

의외의 모습

거기에 도겸은 흔히 연의에서는 인자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과는 달리 숨겨진 본 모습이 존재했다. 그는 후한의 서쪽 변경에서부터 황보숭에게 발탁되어 함께 강족을 크게 무찌른 뒤 거기장군 장온의 참군사로 종군한 인물이다. 거기에 의외로 불 같은 성격을 지녔으며 그 성격답게 바로 그 손견 다음가는 수준의 군무경력을 쌓았다. 더불어 관위는 물론 나이가 좀 더 많은 탓도 있었지만 손견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이후 조정의 명령을 받고 황건적 잔당들을 토벌, 서주 지역을 아예 장악해버리고 지방의 호족들과 연계하는 등의 활동을 하며 입지를 넓혀갔다. 한마디로 문무를 겸비한 인재였던 것이다.

아쉬운 죽음, 그리고 유비

하지만 그런 그도 결국은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해지고, 좋지 않은 시기에 들이닥친 조조의 대군을 상대하다가 그만 극도로 나쁜 상태까지 접어들게 된다. 때문에 가신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유언을 남기는데, 이때 남기는 내용이 꽤나 특이했다. 바로 자신이 다스리던 서주의 후계자를 그저 객장일 뿐인 유비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들이 2명이나 있던 그였기에 유비를 따를 마음이 있던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신들은 이 처음보는 상황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비 또한 스스로 서주를 다스릴 기회를 포기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어찌 두 아들의 자리를 도둑질하겠느냐 말할 정도였다. 물론 이건 유비 스스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일종의 계책이기도 했지만 그걸 계책으로 쓸 만큼 당시 시대적으로도 도겸의 이 유언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도겸의 유언도 있었고 유비를 따르던 이들도 적지 않았기에 유비는 서주를 다스리게 되었고 이후 그가 걷는 길의 초석이 되었다. 한 통치자의 판단이 삼국지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유한양행

국내 제약업계 매출 1위의 기업으로, 아까도 말했지만 유한양행은 깨끗한 기업의 표본으로 여타 다른 기업들과는 차이 있는 모습들을 보여 왔다. 우선 1936년 대한민국 기업 최초로 전사원 주주제를 실시하여 창업주 유일한이 가지고 있던 주식의 52%를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또 국내 최초로 전문 경영인, 즉 CEO제도를 실시하였으며 이는 유일한 박사가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계승하며 시행되었다. 거기에 아들이 아니라 전무에게 계승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가족의 경영권 세습을 하지 않은 기업이기도 하다. 전문 경영인도 외부 인사의 영입이 아닌 내부 인사의 승진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위의 것들로는 부족했는지 아예 대표이사는 1회만 연임할 수 있으며 그 기간도 아무리 길어봐야 최대 6년까지만 가능하다는 제도를 시행했다.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가족 경영은 물론이요 철저한 법인세 납부, 정격유착에 대한 철저한 거부 등 그야말로 깨끗한 기업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