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명예혁명
2023-04-28 어기선 기자
크롬웰 죽은 후 왕정복고로
올리버 크롬웰이 죽은 후 왕정복고가 이뤄지면서 찰스1세 아들인 촬스2세가 즉위했다. 그리고 제임스 2세 등이 즉위를 하면서 왕권 강화에 힘을 쏟았다.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의회와 갈등은 불피했다. 그러자 의회는 제임스 2세의 맏딸인 메리 공주와 결혼한 네덜란드 통치자 오라녜 공 빌렘에게 왕위를 양도할테니 잉글랜드로 오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윌리엄 공은 의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잉글랜드에 상륙했고, 잉글랜드군은 제임스 2세에게서 등을 돌리고 윌리엄 공에 붙게 된다. 결국 제임스 2세가 왕위에 물러나고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가 왕위에 올랐다.산업혁명의 신호탄 쏘아
명예혁명은 산업혁명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것은 윌리엄 3세가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점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 등을 통해 이미 자본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주식회사의 개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주식회사의 경영 기법을 알고 있었다. 윌리엄 3세가 네덜란드가 갖고 있던 이런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영국에 들여와 심어주게 됐다. 더욱이 윌리엄 3세는 귀족과 젠트리 이권을 보장했다. 명예혁명으로 인해 투표권이 부르주아들의 권리로 이양되면서 젠트리는 성장하게 됐고, 이런 성장이 귀족들을 더욱 억제하게 되면서 그에 따라 젠트리가 더욱 성장하게 됐다. 아울러 명예혁명 이후 권리장전이 통과하면서 개인의 권리를 더욱 중시하게 됐고, 이것이 시민 사회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즉, 명예혁명 이후 네덜란드의 자본주의 논리가 들어오면서 산업혁명의 발판이 됐고, 젠트리가 성장하면서 부르주아의 탄생이 이뤄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