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거대 양당구도를 깨야 한국정치가 산다

2024-04-26     백병훈
[파이낸셜리뷰] 정당은 뭔가 문제가 있을 때 생긴다고 정치학 교과서는 가르친다.
마침, 한국의 거대 양당 구도를 깨뜨려야 정치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제3세력론”혹은“제3지대론”이 구체성을 띠고 수면 위로 부상 중이다. 이런 류의 주장과 그 실천은 오랜 기간 기성권력의 위세와 준비부족으로 한국정치의 정체성(停滯性)이라는 깊은 바다 속에서 잠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역사를 바꾸는 것은 바보나 청년이거나 밖에서 들어 온 사람이라고 할 때,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제도권 밖의 사람들이 모여 행동 할 때가 된 것 같다. 왜냐면 위기란 옛것이 지났는데도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을 때이다. 지난 1년 윤석열 정권에서 의회정치 위기의 한 모습인 국회파행이 극명하게 확인됐다. 이 기간, 어느 때보다도 대의민주주의의 으뜸가는 덕목인“다수결 원칙”이 그 치부를 드러내고 돌이킬 수 없는 한계를 그었다. 머리수에 의존하려는 다수결 원칙의 횡포는 의회민주정치의 기본정신을 역설적으로 왜곡시킨다. 그러나 다수결 원칙은 만병통치약도 아니며 최종 종결자도 아니다. 그것의 후과는 고스란히 국민이자 유권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간다. 잘 못 뽑고 잘 못 선택한 댓가일 수 있다. 그래서 한국정치발전의 과제 중의 하나는 잘 뽑고 잘 선택할 수 있는 넓다란 신작로를 여는 것이다. 다수파의 독선과 독주, 전횡은 의회민주주를 형해화시켜 의정(議政)의 파행을 초래한다. 민의가 왜곡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러한 다수결의 미필적 폭력성과 결과론적 야만성은 대의민주주의의 덫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치학은 민주주의를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작품으로 본다. 비록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 막스 베버(M⸱Weber)가 민주주의의 품안에서 선거에 의한 대의제민주주의를 지배를 위한“정당화”(正當化)의 한 형태라고 꼬집기도 했지만, 이제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훔치는 위선과 자기기만을 멈추게 해야 한다. 위선과 자기기만으로는 의회정치가 꽃 피울 수 없다는 통찰을 양심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 이처럼 유감스럽게도 민주주의 정치가 견제와 균형 속에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명제는 여의도 정치에서 실패했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가 정치판에 휘둘려 너무 멀리 나갔다. 그렇다고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뭔가 살아 움직이는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차제에“정권이 무수히 바뀌어도 정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한국정치변형주의>를 끝장내고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더 늦기 전에“국민이 정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정치가 국민을 버려왔다”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을 근거 삼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정치권이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守舊)의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정치발전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에 가득 찬 자기기만 행위다. 머릿수에 의존하는 정치과정은 정치학에 대한 모독이고 민의에 대한 배신행위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이러한 모순을 풀기위해서 제3의 정치적 공간이 필요하다. 타협이 불가능한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강(强) 대 강(强) 세력의 대립 속에서 한 주먹 작은 정치세력의 선택 여하에 따라 절대세력의 철옹성은 손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리하여 거대하고 공고한 양당구도에서 국민들이 숨 쉬고, 쉬었다 갈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제공될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의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고 수렴할 수 있고, 국가정책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수 있는 만인의 전당(秘境)으로서의 정치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고, 올바른 정책을 국회가 선택할 수 있도록 캐스트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정치세력, 이전투구식 의회투쟁으로 인한 정치 흐름의 단절을 막아 줄 수 있는 정치세력의 등장을 더 이상 늦추지 말아야 한다. 최근 국민의 30%가 한국 의회민주주의에 대해 불신하면서 부정적 평가에 표를 던졌다. 그동안 여의도 정치에서 당리당략이 난무하고 체면 없는 야합이 대의민주정치의 순수를 스스로 유린한 결과였다. 대의민주정치는 어찌 보면 국민을 볼모로 한 기만극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독일 제3제국 나치당의 천재적 선전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원인을 찾아 나섰다. 격동기 독일에서 국민들은 독일 의회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주류 정당들을 혐오하고 냉소했다. 마침내 그는 문제의 출발점을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한계에서 찾았다. 그의 눈에는 독일 대의민주주의는 정치적 목적으로 민주주의를 사고파는 가식적 민주주의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윽고 그는 "민주주의의 사기극이 의회”라고 세상을 향해 조롱했다. 그는 대의민주주의의 거대한“역설”을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역설의 또 다른 현장이 지금의 여의도다. 그 역설이 초래한 한국정치의 후진성과 파행성에 여, 야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유권자가 잘못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한국 정치시스템과 정치문화의 책임도 크다. 거대 양당체제가 깨뜨려져 왜곡된 의정구조가 청산되지 않는다면 뿌리 깊은 이런 문제를 해소시킬 수 없고, 한국정치에 희망을 걸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의도의 정치풍토가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숨 막히는 거대 양당체제에서 국민들의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는 제3의 세력에 의한 제3지대 형성이 불가피하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거룩한 분노, 아름다운 반란”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백병훈 약력

비교정치학 박사 한국정치공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