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한국 만화 고사, 정병섭군 사망 사건
2023-05-09 어기선 기자
정병섭군 사망사건 보도로 인해
1972년 1월 31일 정병섭군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누나가 “만화는 사람이 죽었다가도 살아나더라. 나도 한 번 죽었다 살아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당시 언론에서 대서특필을 했다. 문제가 된 만화는 ‘철인 삼국지’였는데 만화 속 장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내용이 있었다. 이것을 언론이 집중조명을 했다. 그리고 정부와 언론은 만화를 해당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때부터 언론은 ‘불량만화’ 색출에 나섰다. 당시 언론에는 ‘동심 좀먹는 만화공해’라는 기사 타이틀을 사용했다. 또한 만화방을 우범지대로 묘사했다. 만화방을 3평짜리 좁은 방 안, 희미한 형광등, 탁한 공기, 그 속에 20여명의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1권에 5원짜리 만화들을 본다라면서 마음껏 뛰어놀아야 하는 어린이들이 만화방에서 건전한 꿈을 키우기보다 허황되고 모험심만 자극받고 있다는 식의 언론보도가 있었다.정부는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
이후 시민단체와 한국부인회 그리고 만화방 업자들이 학교별로 궐기대회를 열어 “절대로 만화가게에 가지 않는다”면서 만화책을 모아 불태웠다. 경찰은 만화방 517개를 수색해 불량만화 2만여권을 수거해 불태웠다. 그리고 만화방 업주 등 70여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즉심에 넘겼다. 정부가 이처럼 대대적으로 만화방 단속에 나선 것은 박정희 정권이 이를 통해 문화를 통제하고 시민을 통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결국 1979년 4월 불량만화르 팔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미성년자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도 1980년 9월 ‘만화정화방안’을 마련했으며 11월에는 국무총리 직속기구 사회정화위원회가 불량만화를 판 출판업자 14명을 구속했다.한국 만화산업계는 퇴행으로
해당 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 만화산업계는 퇴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용 프로그램 중심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성인을 겨냥한 애니메이션 등이 속속 제작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만화는 불량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부모들이 어린이들에게조차 만화를 보는 것을 금하게 했다. 아울러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가 엄격해지면서 사실상 애니메이션 제작도 고사 위기에 놓이게 됐다. 국내에서 더 이상 애니메이션 제작이 힘들어지면서 방송국은 애니메이션 방영을 위해 일본에 판권료를 지불해서 애니메이션을 구입해야 했고, 이로 인해 1980년대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 안방 극장에 버젓이 방영돼야 했다. 물론 1990년대 이후 애니메이션 산업의 활력을 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뒤처지게 된 것도 해당 사건으로 인한 ‘만화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깔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웹툰 등을 통해 만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우리나라 만화 산업이 어느 정도 성장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