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신미양요

2023-05-16     어기선 기자
드라마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신미양요는 1871년 일어난 조선과 미국 간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쟁이다. 구한말 우리나라 경제가 붕괴된 사건이 몇 가지 있는데 당백전의 발행,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 그리고 군표 사건과 신미양요가 있다. 신미양요는 미국을 상대로 해서 승리한 전쟁인 것은 분명하지만 상처 뿐인 영광이었고, 신미양요에서 받은 타격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운요호 사건에서 무기력하게 대응을 하면서 그에 따라 강화도 조약이 체결됐다.

조선 개항이 다급했던 미국

미국은 당초 조선의 개항 요구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 문제는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생산된 백삼을 중국 시장에 팔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백삼을 판매하려고 했지만 중국인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조선 홍삼 때문이었다. 조선 홍삼은 중국 산인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었고, 미국인들이 팔던 백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시장을 빼앗기 위해서는 조선이라는 나라와 교역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즉, 중국 시장의 경쟁자인 조선과의 교역 등을 통해 미국이 이득을 얻으려고 했고, 이에 미구은 조선에 개항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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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포외교 선택한 미국

미국이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키면서 ‘함포외교’를 조선에서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것은 조선의 전투력이 별볼일 없을 것이라는 판단과 일본처럼 순순히 문을 열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1871년 2월 21일 제너럴 셔면호 사건의 공동조사와 통상 요구를 제안했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이에 대해 거부했다. 그러자 미국은 1871년 4월 9일 함대를 배치하고 재차 편지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미국은 강제 개항을 염두에 두고 로저스 제독을 지휘관으로 하는 원정대를 편성했다. 미국은 프랑스에게 연합하자고 제안했지만 병인양요 당시 조선군에게 박살 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협력을 거부했다.

격렬한 저항에 당황한 미군

6월 1일 강화도와 본토 사이의 수로인 손돌목 해협에 미군이 접근해 오자 강화도 조선군이 경고 포격을 하면서 교전이 시작됐다. 400문의 화포가 불을 뿜었지만 비군 부상 3명, 조선군 군사 1명이 전사했다. 그것은 조선군 포가 워낙 낙후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 병사는 남북전쟁 때에도 이렇게 포격을 한 적이 없었다면서 엄청난 포격이었다고 기술했다. 미국은 계속해서 협상을 하려고 했지만 대원군은 이를 거절하면서 결국 로저스 제독이 지휘하는 미국 해군이 6월 10일 상륙해 덕진진과 초지진 등을 점령하고 어재연 장군이 지키던 광성보를 공격했다. 그야말로 미군의 일방적인 전투였다. 거의 학살 수준의 광성보 전투에서 미군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군은 물러서지 않았고,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미 해군 병사들도 점차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미군 입장에서 함포 사격 몇 번으로 일본이 개항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처절한 저항을 경험하고는 상당히 당혹스러워했다. 결국 미군은 이대로 한양까지 점령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고, 이에 철군을 했다. 미군이 철군을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굳이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조선을 개항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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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뿐인 승리

조선 입장에서는 상처 뿐인 승리였다. 미군이 물러갔으니 대원군의 척화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었다. 이에 척화비를 전국에 세웠고, 대원군은 그 기세를 몰아 서원 철폐를 단행했다. 하지만 강화도 방어진이 무너졌다. 조선군이 전멸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서양오랑캐의 군대를 막아낼 군대가 없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불안감을 쌓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것은 대원군 탄핵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강화도 방어진이 무너졌고, 그것을 회복하는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게 됐다. 그러는 사이 일본은 4년 뒤 미국을 흉내 내서 운요호를 보내서 개항을 요구했다. 윤효호는 승조원이 수십명에 불과한 조그마한 배였지만 강화도가 함락됐다. 그것은 조선이 신미양요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회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