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니어 톱모델 리송 “마음이 평생 만들어 놓은 얼굴을 보이는 일”

“단독 화보집 ‘LISONG in Morocco’,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한 작업” “바람이 그려내는 사막처럼 인생도 생각이라는 바람으로 선을 만들어가는 것” ‘올바른 엄마’·‘프로 주부’로 살아온 50년…“주부는 고난도 직업, 목표를 해냈다” 모델 리송의 MZ세대 소통법, “감정의 틈새에 앉아서 감정을 공유한다”

2024-05-31     이창원 기자
시니어
[파이낸셜리뷰=이창원 기자] ‘진짜 어른’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작금의 세상살이가 넉넉한 인심과 배포로는 살기가 쉽지 않아진 탓이다. ‘진짜 어른’이 실종되면서 고령 세대와 이른바 ‘MZ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와의 불통은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고, 일부 남은 ‘진짜 어른’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진짜 어른’도 있다. 강인함 속 부드러움이 있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면서도 주변챙김에 소홀함이 없는 ‘진짜 어른’. 31일 본지가 만난 시니어 모델 리송. 모처럼 대면한 ‘진짜 어른’이었다. 1951년생인 시니어 모델 리송은 지난 2019년 70세의 나이에 ‘제1회 KMA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에서 최우수상과 우정상을 받으며 프로 모델계에 혜성처럼 데뷔했다. 데뷔 이후 앙드레김쇼, 캐나다 밴쿠버 패션위크 패션쇼 등 굵직한 무대에서 인상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모로코를 배경으로 단독 화보집 ‘LISONG in Morocco’을 출간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주한 모로코 대사관이 주재한 모로코 왕국 비즈니스 투자 기회 세미나 겸 만찬 자리에서 특별 게스트로 초청받아 ‘모로코 관광과 문화 진흥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리송은 “마음이 평생의 얼굴을 만들고, 그 마음이 만들어 놓은 얼굴을 보이는 것이 시니어 모델”이라고 말한다. 세월의 흐름 속에 마음이 작업한 얼굴을 통해 자신의 진솔한 감정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그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정적으로 해내는 강인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MZ세대 모델들과의 허물없는 소통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젊은 세대들의 감정의 틈새에 앉아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시니어 모델 리송의 ‘삶의 방식’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겸손하고, ‘올바름’을 항상 생각한다는 리송.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모로코

최근 주한 모로코 대사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고 들었다

지난 24일 모로코 왕국 비즈니스 투자 기회 세미나 겸 만찬 자리에서 ‘모로코 관광과 문화 진흥 감사패’를 받았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원래 한국 CEO 33명을 초청한 자리였는데 특별 게스트로 초청받아 참석하게 됐는데 감사패까지 받게 돼 뜻깊었다. 지난달에 출간한 패션 화보집 ‘LISONG in Morocco’으로 ‘모로코 관광과 문화 진흥에 탁월한 공로’를 이뤘다는 이유로 받게 됐다고 들었다. 샤픽 하샤디(Dr. Chafik RACHADI) 대사께서 직접 화보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소개해주셨고, 감사의 말씀도 전하셨다. 모델을 시작한 지 4년 차에 들어선 시점에서 또다시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 감행한 모로코행과 그 결과물인 ‘LISONG in Morocco’를 출간한 후 받은 감사패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화보집의 배경으로 모로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사실 모로코에서 개인 화보집을 낼지 아무도 몰랐고, 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요즘 단독 화보집 출간도 흔치 않은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과 사건들이 겹친 나비효과로 일이 진행됐다. 우선 화보집에 앞선 인터뷰 기사와 책(리송, 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LISONG)들을 접한 분들께서 저를 눈여겨보신 것이 시작이었다. 특히 저를 관심있게 봐주신 한 방송국 관계자분과 향후 활동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모로코를 배경으로 한 화보집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다. 제가 모로코를 2번 정도 여행한 경험이 있고, 모로코가 가장 좋았다는 얘기를 듣게 된 방송국 관계자께서 모로코에서 화보집을 찍어볼 것을 제안해 주셨다. 아직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였다. 제안을 듣고 난 후 저도 바로 마음이 통해 팀을 꾸려 모로코로 떠났다. 스탭 포함 9명이 팀이 돼 사진과 영상 작업을 했다. 화보집 사진 외에도 50분짜리 영상 필름도 제작했다.
/사진=리송

화보집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촬영을 하면서 입고 있는 옷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고, 제 자신이 예쁘게 보이려 노력하지 않았다. 이번 촬영은 사하라 사막에서도 진행됐는데 사막은 형체가 매순간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삶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막이 바람에 따라 선이 달라지는 것처럼 인생도 생각이라는 바람으로 선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세월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다시 한 번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그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한시도 그냥 지나칠 시간이 없는데’, ‘내 가슴엔 다 있는데’ 하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을 제 얼굴과 감정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화보집에서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사진이 거의 없는 것도 그 이유다. 저는 항상 균형이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는데, 세월이 주는 균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얼굴의 각기 다른 주름들의 균형을 통해 제 생각과 메시지를 전달되기를 바랬다.

모로코 화보집 촬영 중 어려운 점은 없었나

저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모로코로 떠날 때부터 귀국할 때까지 9명의 팀원들이 모두 아프지 않았고, 마음도 상하지 않았고, 기뻤고, 다같이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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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대사관의 초청을 받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남편이 비즈니스 때문에 모로코 대사관 조찬에 초청됐었다. 그 자리에 남편이 제 화보집 3권을 가져갔었는데 대사께서 제 작품을 인상깊게 보셨던 것 같다. 또 저희가 사심없이 만든 사진과 필름이 귀하게 쓰여질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크다. 되돌아보면 인터뷰 기사, 책 출간을 제안하신 분, 책을 보시고 또다른 활동을 제안하신 분 등 고마운 분들이 곁에 있었고, 대사관에 화보집을 전달한 남편, 이 모두가 70대 여성이 상상도 못했던 일을 만들어 주셨다.

약사 생활을 정리한 이후 50년 동안 육아와 살림에만 집중하다 70세의 나이에 ‘리송의 삶’을 시작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도전을 시작하면서 불안감이나 망설임의 감정은 없었나

화학 과목을 좋아해 약대를 갔는데 그 길이 아니더라. 약사 일을 할 당시 대기업 과장이었던 남편의 월급보다 3배 정도 많이 벌기도 했다. 그래도 딱 ‘이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해 바로 접었다. 그리고 ‘난 엄마가 돼야지. 올바른 엄마가 돼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직업을 주부로 결정했다. 그 후엔 주부로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같은 남편, 내가 선택한 남편, 선물처럼 온 아이들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마음먹었고, 가정의 ‘선장’ 역할을 맡았다. 가정의 중심을 잡고, 남편은 일에 몰두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었다. 주부는 고난도의 직업이었고, 저는 그 안에서 자존감을 찾았다. 저는 프로 주부였고, 마음먹었던 목표를 해냈다고 자평한다. 다만 주부로서의 성공 기준은 몰랐다. 당시 앞으로 펼쳐질 모습은 캄캄했고 몰랐지만, 오히려 단순하게 제가 핑계 대지 않을 길을 가고 싶었다. 제 성격이 또 원래 그렇다. 부정적인 사고가 들어올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 앞이 캄캄해도 긍정을 향해 갔고, 그것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
‘LISONG

왕성한 활동이 돋보이는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정신과 신체는 연관돼 있다. 정신이 무너지면 신체가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척추를 곧게 펴듯이 정신도 바로 서 있어야 한다. 또 쉴 때는 철저하게 잘 쉬는 것이 중요하다. 일과 쉼을 완벽하게 구분하고, 중요하지 않은 곁가지는 잘 쳐내는 편이다. 쉴 때는 일 생각을 하지 않고 집중해서 쉬고, 일을 할 때 집중력을 몰아 쓴다.

모델 활동 이후 주변의 변화는 없나

2019년 제 나이 70세에 데뷔해서 그냥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생겼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은 ‘결국 하는구나’라는 반응이 많다. 주부 생활 중에 했던 연극 활동 등이 기억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가 원래 활자를 좋아하는데 39살 당시 목까지 뭔가 꽉 찬 느낌이 왔고, 소리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자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연극단체에 들어가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연극을 하면서 저도 모르는 제 모습을 발견했고, 1년에 2편씩 10년 동안 공연을 올렸다. 굉장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IMF 이후 연극단체에 대한 후원이 중단되며 연극 활동을 멈추게 됐지만, 지난 2018년 남자 동창 2명과 함께 안톤체홉의 ‘청혼’이라는 연극 공연을 올리며 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 전체 인생을 볼 때 전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좋은 사람들,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앞으로도 더 만날 것 같다. 놀라운 일이다. 삶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숨 쉬는 것, 서 있는 것, 말하는 것, 들을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 모두 당연한 것이 아니다.
시니어

모델 활동 시작할 때 고민은 없었나

당시에는 고민이라기보다 해야 할 것을 찾아야 했다. 칠순잔치를 끝내놓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했다. 영화와 책을 많이 보지만, 그렇게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시니어 모델을 처음 선발한다는 내용의 스크랩을 전해줬고, 그렇게 시작됐다. 저는 모델 데뷔 전 2년 반 동안 친구들의 사진 동호회에서 모델로 작업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는 마음가짐을 잘 알고 있었다. 굉장히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통한 친구들의 눈이 저를 찍고 있는데 ‘척’을 한다거나 거짓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제 가슴에 있는 감정을 정말 정직하게 드러내는 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누구보다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시니어 모델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였을 것 같다

시니어 모델이 뭔지 저도 몰랐다. 남편이 준 정보를 접한 후 처음엔 단순히 시니어 모델이 뭔지 배워봐야겠다고 그냥 가봤다. 그런데 첫날부터 워킹을 배웠고, 3~4개월 후 한 백화점이 주최한 전국 패셔니스타 선발대회에서 TOP 10(남자 5명, 여자 5명)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렇게 시작됐고, 이후 한국모델협회 1회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에서 최우수상과 우정상을 받게 됐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됐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왔다. 아직도 전 스스로 모델이라는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시니어 모델로서의 책임감을 갖게 됐다. 강하게 말로 하는 것보다 행동하고, 나누려 노력하고 있다. 물의 파장이 일 듯이 저를 통해 정화가 됐으면 하고, 많은 시니어 모델들이 응축되고 귀한 노후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사진=이창원

일상 속 변화도 많을 것 같다

없을 수는 없다. 많은 모델들이 롤모델로 지목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기를 요청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너무 죄송하고, ‘내가 뭔데 정말’ 이런 생각과 함께 제대로 된 사림이 돼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곤 한다. 시니어 모델은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키가 크고, 입은 옷을 살리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는 얘기다. 마음이 평생의 얼굴을 만들고, 그 마음이 만들어 놓은 얼굴을 보이는 것이 시니어 모델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그려놓은 주름, 마음이 얼굴을 도화지 삼아 그려놓은 나의 형체들, 눈빛을 나타내는 일이다. 시니어 모델은 세월이 그려놓고, 세월을 겪으며 마음이 작업해놓은 얼굴의 모습을 갖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나 이렇게 되고 싶어요’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모델 활동 5년 차에 들어서고 있다.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

처음 무대에 섰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워킹을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무대를 처음 걷는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또 지난 2021년 캐나다에서 열린 패션쇼에 대한 기억도 강하게 남아있다. 7번째 모델로 런웨이를 걸어나간 뒤 턴을 하고 돌아오는 순간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하고 있다. 큰 딸도 현장에 있었는데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더라.

MZ세대 모델들과 허물없는 소통으로 유명하다. 자신만의 비법이 있나

손주 8명을 돌봤던 경험이 있지 않나. 책임을 지는 사랑을 하지만, 할머니는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제가 잘 하는 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먼저 사랑을 하되, 다른 사람이 날 사랑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사랑을 받는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저는 사랑에 있어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지 않다. 또 제가 소통하는 방법은 감정의 틈새에 앉아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분에 스며들 수 있는 부분을 저는 본능적으로 안다. 예를 들어 손주가 힘든 과정을 겪고 있던 시기에 학교 앞에서 만나서 팔짱을 끼고 집으로 가면서도 힘든 점에 대해서 굳이 물어보지 않고, 그저 등만 툭툭 쳐줬다. 그리고 이제는 모델들과 일을 할 때 그들의 감정의 틈새에 들어간다. 촬영 현장에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편하게 다가올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는 세월이 그냥 나한테 온 거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게 자연스럽게 먼저 다가가고, 문을 열어주는 사소하지만 당연한 부분까지도 항상 겸손하게 행동하려고 한다. 나이를 먹었으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부끄럽지 않아야 하니까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절대로 말이 앞서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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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주변에서도 그런 질문을 요즘 많이 받는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데 제가 미래를 어떻게 알겠나.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도 함부로 꾸지 못한다. 저는 그저 열심히 살아갈 뿐이고, 주어진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또 주어진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를 즐길 뿐이다.

자신의 인생을 빗댈 수 있는 음악이 있나

제가 좋아하는 ‘인생 노래’는 많다. 2018년 친구들과 연극을 다시 올리던 시기에 많이 들었던 음악은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의 OST 중 ‘try everything’이다. 정말 많이 듣고, 이 음악을 통해 큰 힘을 얻었다. 또 장사익 선생의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라는 노래도 참 좋아한다. 인생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노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