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오발령 그리고 이웅평 귀순

2023-06-01     어기선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지난달 31일 서울 시민들은 날카로운 기계음으로 울리는 경계경보 발령에 단잠을 깨야 했다. 서울시가 오전 6시 41분 위급대피문자를 전송했는데 ‘무엇 때문에’ ‘어디로’ 대피를 해야 한다는 말도 없이 ‘대피를 준비하라’는 문자메시지였다. 이후 20분 뒤 행정안전부는 ‘오발령’이라고 규정했지만 서울시는 ‘오발령이 아니다’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후에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이 같은 소동이 벌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1983년 2월 25일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대위의 일화가 떠오른다는 말이 나왔다.

1983년 2월 25일 그날

1983년 2월 25일 그날 우리나라는 팀 스피릿 훈련을 진행했다. 이에 북한에서는 준전시 상태에 해당하는 경계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에서 미그기 편대가 이륙했다. 그런데 한 대가 편대를 이탈해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추격하는 북한 미그기를 따돌리고 저공비행을 통해 계속 남하했고, 이에 초계비행 중이던 한국의 F-5 전투기들이 요격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전역에는 “공습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면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공습 경계경보를 알리는 아나운서는 미그기가 우리 상공을 침범한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미그기가 한반도 상공을 침범하고 있다고 분명히 메시지로 알렸기 때문에 수도권 시민들이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었다. 이윽고 이웅평 대위는 투항의 의사로 미그기 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에 수원비행장에 안전하게 착륙시키고, 귀순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귀순한 후

이웅평 대위는 그렇게 귀순을 했고, 정부로부터 15억 6천만원을 받았다. 그것은 미그기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당시 은마아파트 분양가가 2천만원이었고, 라면이 100원 했을 때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돈이었다. 이웅평 대위는 귀순 후 공군 소령으로 특별임관됐고, 공군사관학교 교수의 딸과 결혼도 하는 등 남한 생활에 잘 적응하였다. 하지만 북에 남겨진 가족 생각과 언제 테러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2002년 5월 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국군수도병원에서 간기능부전증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