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6월 5일 레미제라블 배경 프랑스 6월 혁명 발발

2024-06-05     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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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32년 6월 5일은 프랑스 왕국 파리에서 군주제 폐지를 내세운 6월 혁명이 발발한 날이다. 빅토르 위고 소설 ‘레미제라블’의 역사적 배경이 된 사건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습격 사건 이후 100년 간 이어져왔다. 우리나라 민주화가 급격하게 이뤄진 반면 프랑스는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넘어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점에서 프랑스 6월 혁명은 그 과정의 한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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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군주제 국가

1830년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가의 샤를 10세가 타도된 이후 루이필리프가 하원 의회에 의해 프랑스 국민의 왕으로 선출됐지만 공화주의 입장에서는 왕만 교체됐을 뿐이었다. 이에 공화주의자들은 왕을 끌어내리고 공화제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1832년 그 기운이 무르익었다. 그런데 국왕의 유력한 조력자 등등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6월 혁명의 불을 당기게 만들었다. 이에 공화주의자 등 39명은 5월 22일 회동을 갖고 보고서를 채택하기로 했다. 해당 보고서는 정부가 자유를 유린하고 소요를 부채질하고 무질서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을 가했다. 해당 선언문이 발표되면서 공화주의자들은 열광을 했고, 왕정파는 바짝 긴장을 해야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6월 5일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이 예정돼 있었다. 장례식에 엄청난 민중이 몰려들 것이라고 판단했고, 이에 공화주의자들은 장례식을 계기로 일어서기로 했다. 결국 구가경비대가 시위대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충돌이 일어났고, 파리 곳곳으로 번져 나가면서 소요가 계속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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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일어났지만

야당 국회의원들은 6일 아침 왕에게 특사를 보내 정책을 바꾸고 유혈 사태를 종식시키라는 요구를 했다. 하지만 왕은 그것을 거절했다. 이에 6일 국가경비대는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했고, 이 과정에서 8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저녁에는 봉기가 진압됐다. 이후 내각회의는 왕에게 파리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칙령에 서명하도록 했다. 그리고 왕정파는 소요를 주도했던 사람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게 했지만 항고됐지만 최고파기법원은 위법하다면서 보통법 재판소로 되돌려보냈다. 공화주위자는 크게 기뻐했으며 빅토르 위고 역시 왕정파에 대한 규탄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정파는 공화파를 끝내 무력 진압했다. 그러나 1848년 2월 혁명이 무너지고 제2공화국이 수립됐다. 다만 2공화국 역시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로 인해 붕괴되고 만다. 소설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6월 혁명 현장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탄생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