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6월 12일 한국은행 설립

2024-06-12     어기선 기자
한국은행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50년 6월 12일은 한국은행이 설립한 날이다. 물론 그 이전 대한제국 시절부터 중앙은행이 있었지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으로 이날 설립됐다. 한국은행법은 설립된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이에 한국은행의 중립성과 자주성이 보장된다. 사실상 우리나라 경제 대통령이라고 보면 된다.

대한제국서부터

우리나라 중앙은행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태동됐다. 자력으로 성장하려고 했지만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실패했고, 1907년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 제일은행 경성지점이 막대한 자본을 앞세우면서 통화정책을 실시하게 됐고, 사실상 중앙은행으로 기능하게 됐다. 한일병탄 이후 대한제국의 명칭을 조선으로 환원하면서 중앙은행을 ‘조선은행’으로 고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뒀다. 조선총독부 산하에 뒀기 때문에 일본 제국의 척식 사업에 중점을 둔 금융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조선은행으로 인해 착취 당한 백성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에 장진홍 의사는 구미 출신 독립운동가로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군사훈련을 지도했고, 중국 베이징에서 폭탄 제조법을 배우고 1927년 영천에서 폭탄을 제조해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했다. 해당 사건은 일제강점기 의열단 3대 의거 중 하나로 이육사는 해당 사건으로 인해 대구형무소에 투옥됐고, 수감번호가 ‘264’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자신의 아호를 ‘이육사’로 바꿨다.
사진=픽사베이

해방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이하면서 중앙은행 설립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하지만 미군정 혼란기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도 중앙은행 설립 추진이 수월하지 않았다. 결국 1950년 5월 5일 한국은행법이 제정됐고, 6월 11일 조선은행이 완전히 폐지되고, 6월 12일 한국은행의 창업식이 거행됐다. 하지만 6.25 전쟁으로 업무가 다시 중단됐다. 한국은행 본점 청사가 6월 28일 북한군의 손에 떨어지면서 지하금고의 금괴 일부와 당시까지도 사용됐던 구 조선은행권이 대거 약탈됐다. 게다가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의 조폐기가 북한군에 떨어지면서 북한군이 마음대로 화폐를 발행하게 됐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급하게 화폐 개혁을 단행했고 부산으로 옮겨진 한국은행 임시본부는 새로운 은행권 발행을 요청했다. 한국은행과 재무부의 관계는 이승만 정권 때까지만 해도 한국은행이 우위를 점했지만 박정희 정권 들어서면서 고도성장을 목표로 일사불란한 경제정책 집행을 위해 한국은행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한국은행 독립성이 크게 훼손됐다. 이후 1997년 한국은행법이 개정되면서 법적으로 명확한 독립기관이 됐으며, 실질적으로도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국책은행 본점의 지방 이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은행도 지방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